사람들은 같은 곳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흔히들 말하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한 부동산 업자에게 계속 식사를 같이 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며칠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 당당한 어조로 ‘밥 한번 먹어야지’하면서 식사 요청을 한다. 다음날 그는 또다시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화장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현관문이 삐걱거린다’면서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또다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술도 한잔 사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는 얼마전 5만달러짜리 콘도를 구입했다. 그래서 이 바이어는 부동산업자에게 대단한 은혜를 베푼 것처럼 평생 밥을 얻어 먹을 심산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측의 생각은 다르다. 5만 달러짜리 매매를 성사시키려면 100만 달러짜리 집을 팔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적다. 그다지 타산이 맞는 거래가 아니다. 그런데다 바이어의 지속적인 고자세로 인해 클로징을 하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한 사람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만, 또다른 사람은 득보다 실이 많은 거래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있다. 주일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친교 모임에 열심히 얼굴을 비추고 다녔다. 늘 웃는 얼굴로 다니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 모임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래서 목사와 교인들은 믿음이 참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사람의 속내는 비즈니스에 있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신실한 사람이라고 여겨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도 시켜주고 그에게 일거리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맡으면 이 사람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점점 사람들로부터 일거리 소개가 줄어들자 그는 주저 없이 그 교회를 떠나 또다른 교회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사람들에게 웃으며 일거리를 부탁하며 다녔다. 교회를 다니는 목적이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자기 비즈니스 광고 수단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신실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 교회는 잠정적 고객일 뿐이다.

           외식을 자주 하는 어떤 사람은 바쁜 점심 시간마다 식당에서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찬이 덜 나왔다, 국이 짜다, 이렇게 자주 오는데 서비스는 없느냐, 웨이츄레스를 세번이나 불렀는데 안왔다, 김치가 너무 시었다’면서 웨이터를 불러세워 일일이 말한다. 그는 자주 식당에 온다는 이유로, 그 식당을 먹여살린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혹은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당 입장에서는 이런 손님은 더이상 오지 않는 편이 낫다. 간간이 콜로라도에서 대외적인 행사가 있다. 영사관에서, 혹은 한국 정부에서, 아니면 전미 무슨무슨 협회 소속의 사람들이 덴버를 방문한다. 외부 인사들이야 당연히 그 지역의 단체장을 우선적으로 만남의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리고 간담회를 열어 방문한 목적에 대해 설명하면서 건설적인 얘기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이런 간담회를 참석하다보면 청중에 따라 연설하는 내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름만 내걸고 있는 협회에게 무엇을 호소하고 당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천을 기약할 수 없는 헛발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은 나름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장이라고 생각해서 참석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대표라고 여기지 않는다. 

           한 건축회사는 몇번씩 사기를 쳐 놓고 원성이 커지자, 이곳을 잠시 떠나 타주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와서 한인사회의 물을 흐리고 있다. 얘기를 잠시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실력이 대단해서 사람들이 작업을 계속 의뢰한다는 자만에 차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 옛날에 아는 사람인데…” 혹은 “자기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도와줘야지”하면서 과거를 쉽게 망각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주간 포커스 신문사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할 말은 해야겠다. 그들은 주간 포커스의 독점을, 그리고 필자가 혹여 부자라도 될까봐 매우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아니며, 신문사를 위한 광고주는 더욱 아니며, 포커스가 힘들었을 때 도와준 이들은 더더욱 아니다. 한낱 남의 말을 즐기며,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는 놀부 심보의 소유자들일 뿐이다. 필자의 입장은 이렇다. 포커스의 전문 인력과 열정 그리고 제작 비용 등을 따져본다면, 포커스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한인사회에서 귀중한 존재로 인식되어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또한, 포커스는 독점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길만 묵묵히 걸어왔을 뿐이다. 한 때 덴버지역에 9개의 신문이 난립했을 때도 그랬다. 지난 11년 동안 포커스는 독자들을 위해 주말도 없이 뛰어다니며 새로운 소식,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신문은 물론, 웹사이트, 전자신문, 카카오톡, 페이스북을 동시에 배포하면서 광고주들에게 타매체에 비해 10배, 20배의 효과를 안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매주 발행되는 128페이지, 4천부에 대한 인쇄비만 해도 매달 2만 달러가 훌쩍 넘는다. 목요일 저녁에 오로라 h마트에 가서, 선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포커스 신문을 본다면 신문사의 규모와 제작 비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직원 규모에 따른 지출도 남다르다. 포커스는 한두명의 직원으로 운영되는 업체와는 규모부터가 다르다. 아홉명의 직원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포커스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금의 포커스는 고생없이 이룬 성과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기와 질투가 아니라 포커스가 가진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포커스를 창간하면서 필자가 겪었던 개인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알만한 분들은 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다 미국에서 처음 장만한 내 집을 숏세일로 처분해야 했고, 제때 페이먼트를 내지 못해 자동차도 은행에 차압당했었다. 신문사를 창간한 직후 유산의 아픔도 겪었고, 개스값이 없어 광고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 걱정이었던 날들도 있었다. 경쟁 신문사들로부터 학력위조에다 불법체류자 라는 어처구니 없는 모함을 받으며 가족 전체가 힘든 적도 있었고 황당한 찌라시 배포로 필자의 인격에 찬물을 끼얹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언론 전공자로서 정확한 기사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틀렸다고 생떼를 쓰며 고소를 당한 적도 있었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했다. 이러한 역경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언론의 길을 걸어왔다. 다시 말해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콜로라도에서 포커스처럼 일해 온 신문사가 없었기에, 생각없이 입버릇처럼 비아냥거리는 몇몇에게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는 정말 열심히 뛰었고, 노력했고, 희생했고, 이제는 자부심으로 만들어지는 콜로라도 교민들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요즘 정치권에서도 만감을 교차시키는 발언들이 난무한다. 야당시절 당당하게 내뱉었던 말이 여당이 되고 나니 독이 되기도 하고, 국가를 위한 진심어린 발언도 각계각층에서 새롭게 재해석되는 일도 빈번하다. 곧이 곧대로 듣지 못하면 본인들의 머리만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동상이몽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희로애락은 주관적인 인식에 달린 것이 확실하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았을까 하면서 가시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가시가 돋보일 수 있다. 고 법정 스님은 ‘자기 나름의 이해’는 곧 오해의 발판이라고 했다. 자기 마음대로 이해한 부분이 없었는지, 모두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