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세계한인침례인 선교대회’에서 정경석 선교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대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정 선교사님을 다 아셨습니다. 어느 분이 지나가시면서 선교사의 대부와 같으신 정 선교사님을 모르시냐며 의아해 하셨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난 2017년 6월 ‘미주남침례회 한인총회’ 후 ‘해외선교부 세미나’에서 정 선교사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정 선교사님은 에콰도르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정 선교사님은 베네수엘라에서 40년을 사신 분입니다. 스페인어가 가장 편하신 분입니다. 통역의 부담이 없어 이번 9월 6일 에콰도르에 갈 때 강사로 모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강의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정경석 선교사님과 베네수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선교사님은 수산대학을 졸업하신 후 해병대에 입대하셨습니다. 대위로 제대하신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1977년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해양수산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한국으로 갈까 베네수엘라로 갈까 고심하다가 베네수엘라로 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제시하는 연봉보다 베네수엘라가 4배의 연봉을 제시하며 초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교적인 마인드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연봉으로 결정했답니다. 처음 생각으로는 한 2년 정도 근무한 후에 한국으로 갈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쿠마나’시에 위치한 ‘동부대학교’ 해양연구소 Research Professor(연구원)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미국남침례회 선교사’님을 도와 ‘쿠마나 제일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런데 1982년 ‘미국남침례회 선교사’들이 철수하면서 정 박사님이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83년 ‘미주남침례회 한인총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1984년부터 ‘쿠마나 제일교회’를 맡아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부터 현지인에게 교회 리더십을 이양했습니다. 교회가 없는 지역에 2~3년에 한 교회씩 개척했습니다. 인구 80만 명이 넘는 ‘쿠마나’지역에 교회가 100여개 이상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 중에서 정규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교회개척도 중요하지만 목회자 양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에 교수직에서 은퇴하자마자 ‘골든게이트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셨습니다. M.Div.(목회학 석사과정)와 D.Min.(목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했습니다. 2005년에 쿠마나에 ‘카리브 복음주의 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2017년 은퇴하실 때까지 12년 동안 학사와 석사과정 100여명, 리더십 과정 150여명, 총 250여명의 목회자를 양성했습니다. 지금은 졸업자들이 모교에서 강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7년 쿠바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1998년 2차 방문 시 한인 16명을 만났습니다. 1999년 ‘아바나 개혁교회’를 세웠습니다. 첫 예배에 100여분이 참석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은퇴 후 지금은 쿠바 선교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1939년생(78세)이신 정 선교사님은 2013년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가 쏜 총알이 왼쪽 허벅지를 뚫고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하게도 총알이 뼈나 신경을 빗겨 나갔습니다. 검은 흉터를 보여주셨습니다. 크기는 25센트 동전만 했습니다. 지금도 총상 후유증으로 불편하게 걸으십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북쪽, 콜롬비아 우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약 3,200만 명이고 땅은 한국의 9배 정도입니다. 2011년도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석유매장량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제까지 석유로 먹고 살았습니다. 2014년 수출 물량의 97%가 석유였습니다. 1973년 석유 값 폭등으로 국가 수입이 4배로 늘어난 적도 있습니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공산품의 80%를 수입했습니다. 1999년 ‘차베스’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중남미 나라 중에서 가장 좌파적인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2002년 2월 국영 석유회사 약 2만여 명을 친정부인사로 물갈이 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젊은이들은 숙련도가 떨어지고, 미숙한 회사운영으로 생산량이 줄어들었습니다. 2004년 12월 ‘쿠바’의 ‘카스트로’와 ‘중남미 반미연대’를 선언했습니다. 2006년 3월 외국 기업을 몰아내고 석유 등 천연자원을 국유화했습니다.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선심성 복지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복지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했는데, 엄청난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2007년 1월 통신, 전기산업을 국유화했습니다. 좌파정권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2000년도부터 ‘셰일오일’을 채굴하는 기술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동안 채굴비용 때문에 채굴하지 못했던 미국이 엄청난 오일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2015년 국제 유가가 폭락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수출이 반 토막이 났습니다. 2017년 1,600% 인플레이션이 생겼습니다. 소고기 6파운드를 사려면 일반 노동자 한 달 월급을 지불해야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라고 갈파하기도 했습니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자원이라도 잘 못쓰면 재앙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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