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필사로 마음 다스리는 최남희 할머니

          살다보면 속상한 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식이 말썽을 썩이기도 하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부부 사이에도 의견 충돌이 일어 속을 끓이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제때 해결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결국은 병으로 이어져 수명이 단축되거나 병약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오로라의 한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최남희(83) 할머니는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을 비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면 만사가 형통하다. 매일 이 걱정, 저 걱정에 젖어 살면 삶이 옹졸해보인다. 용서할 것 있으면 용서하고, 툭툭 털어버리는 것이 젊고 건강하게 사는데 최고”라고 최 할머니는 말한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여는 최 할머니는 아주 특별한 취미가 있다. 20년 전에 시작한 성경 필사가 그것이다. 한국에서 특별히 주문한 성경필사용 종이에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성경을 적어나가는데, 매일 2장씩, 3시간씩을 성경 필사에 오롯이 바치고 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성경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의 위안이 얻어지고 나쁜 일은 다 잊어지게 된단다. 북한 강원도 원산이 고향인 최 할머니는 중학교에 재학 중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부모님 덕분에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해 1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당시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남편과 25살 때 결혼했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사랑만 받으며 지내다 7남매의 장남과 결혼해 시부모님을 모시고 큰 살림을 떠맡게 되니 막막했다. 요리를 잘했던 시어머니 옆에서 눈치껏 요리를 배우고, 하선정 요리학원을 몇년씩 다니며 차츰 요리에 실력이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남편이 최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만 좋아하다보니 외식을 하는 일도 1년에 손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남편은 “나가서 먹으면 맛이 없다”며 간혹 외식을 하더라도 집에 돌아와 꼭 집밥을 한번 더 먹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온지 30년이 지났지만, 작년에 처음 피자를 먹어봤다고. 

         재미교포 며느리와 결혼한 아들을 따라 뉴욕으로 이민을 온 최 할머니는 뉴욕와 뉴저지에서 6년을 살다가 친언니가 사는 덴버로 24년 전에 이사를 왔다. 최 할머니는 공기도 좋고 사람도 좋아서 덴버가 뉴욕보다 좋다며 만족해했다.  최 할머니는 10년 전에 당뇨 진단을 받았지만, 음식과 약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혈압과 관절염도 있지만, 관리를 잘 해서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최 할머니는 “80세 이전에는 몸이 아픈 곳도 없었다. 교회에 나가서 무슨 행사나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일을 도맡아 하곤 했다. 그런데 80이 넘어가니까 몸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더라”며 “그래서 올해부터는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비교적 건강한 몸이지만, 언제 어떻게 몸 상태가 바뀔 지 모르는 나이가 되니 기도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이 아닌, 내세를 바라보는 내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주는 그날이 올 때까지 최 할머니는 바쁜 몸놀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매일 밤낮으로 참 바쁘게 산다. 하루가 짧을 정도로 바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일과가 빠듯하다. 하루 세끼 요리도 해야 하고, 성경도 써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한다. 겨울이 되면 뜨개질을 해서 덧버선을 짜서 교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낙으로 산다. 노인이니까 이제는 못한다는 생각은 안한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찾아서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 예전에 미국에 다니러 오셨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내게 ‘아가, 내가 혹시 너한테 욕하거나 서운하게 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다오’라고 하셨다. 그런 적 없다고 대답하자 시어머니는 ‘그렇지? 나도 그런 것 같아’ 하며 한결 편한 얼굴로 귀국하셨다. 나도 죽기 전에 누구에게도 서운한 마음이나 분한 마음을 품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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