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취임 자체가 사법개혁의 상징”

         김명수(58)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6년 임기를 시작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취임식 직후 기자단에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다음 달 1일부터 검찰이 피의자의 구속을 위해 법원에 청구하는 구속영장의 사본을 신속하게 피의자 변호인에게 팩스나 이메일 등으로 전달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변호인이 직접 법원에 와서 영장 사본을 받아 가야 한다. 검사와 변호인이 참석한 가운데 판사가 피의자를 심문해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 실질 심사는 법원에 영장이 접수된 뒤 하루 이틀 내에 이뤄진다. 그간 변호인이 영장에 기재된 혐의 내용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해 피의자의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변호인이 사건을 숙지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늘려주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현재 사법부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와 진영을 앞세운 흑백 논리의 폐해는 법관마저도 이념의 잣대로 나누어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또 “국민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법관 개개인의 내부로부터의 독립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제도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판사들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재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대법원은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동안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각 법원의 법원장이나 판사회의로 넘기겠다고 했었다. 김 대법원장은 상고심(3심) 사건 적체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상고심은 사회의 규범적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급증하는 상고 사건 해소를 위해 상고허가제, 상고법원, 대법관 증원 등의 방안들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대법원 사건은 한 해 4만여건에 이른다. 대법관 한 명당 하루 1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 “재판의 전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러 불신의 요인들을 차단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성향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명단을 갖고 있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현 대법원장보다 무려 13기수 후배인데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탓에 다소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법조계에서는 대표적인 진보성향 인물이어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한편, 김 대법원장은 부산고등학교 서울법대 특허법원부장판사, 서울고법부장판사, 춘천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 맛집, 그 병원 … 조작된 연관검색어
특정업체 조회수 높여 33억원 챙긴 검색어 조작단

          이달 초 부산광역시 해운대의 주택가 3층 건물로 검찰 수사관 10여명이 들이닥쳤다. 연면적 330㎡(약 100평) 신축 건물에는 광고 대행과 인터넷 사이트 제작을 하는 T사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검찰 수사관이 살펴보니 일하는 직원은 거의 없는데 사무실 책상마다 빼곡히 들어찬 컴퓨터 100여대에선 특정 검색어를 반복해서 입력하거나 자동 클릭하는 봇(BOT) 프로그램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사무실은 음식점, 성형외과·치과 등 병원, 학원 같은 자영업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의 연관 검색어창에 상호가 나오도록 조작한 ‘연관 검색어 조작단’의 근거지였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27일 연관 검색어를 조작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T사 대표 장모(32)씨와 Z사 대표 이모(34)씨를 구속 기소하고, 회사 직원 두 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프로게이머 출신이다. T사와 Z사는 사실상 한 회사나 마찬가지였고, 이들이 2014년 7월부터 약 3년간 벌어들인 돈은 33억5000만원에 달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연관 검색어’ 겨냥
네이버의 방어 시스템도 비웃다

           한국 최대 검색 포털인 네이버에선 검색창에 이용자가 검색어를 치고 검색 버튼을 누르면 검색창 바로 아래 연관 검색어 코너에서 해당 검색어와 관련된 단어들이 10여개 안내된다. 예컨대 ‘광화문 맛집’을 치고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식당’처럼 상호들이 소개되는 식이다. 네이버는 이 서비스 기능에 대해 ‘사용자들이 기존에 많이 찾은 검색어나 검색 결과를 추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실제 많이 찾아보거나 클릭을 해야 연관 검색어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의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네이버는 국내 검색 시장점유율 70%를 넘나드는 이 분야의 절대적인 존재다.  장씨 등은 이 점을 노렸다. 2014년부터 음식점·병원·학원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들의 상호를 연관 검색어에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 특정 상호를 입력하고 작동만 시키면 자동으로 클릭을 하거나 상호를 반복해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클릭·입력이 많아질수록 연관 검색어 상위로 올라가 노출된다는 걸 악용한 것이다. 네이버는 ‘검색어 조작’을 막기 위해 특정 IP(접속 인터넷 주소)에서 클릭 수가 급증하면 차단하는 IP 필터링 시스템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장씨는 매시간 IP를 바꾸는 프로그램을 깔아 네이버의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장씨 등은 최근까지 133만개의 검색어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씨 등은 처음엔 알음알음 ‘검색어 조작’ 의뢰인들과 거래를 텄다고 한다. 그러다 소문이 나 돈을 벌게 되자 부산에 건물을 지어 ‘기업형’으로 하게 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자영업자들과 장씨 등을 연결해주는 전문 브로커도 생겨났다. 장씨는 최근엔 아예 업무제안서를 만들어 영업에 나섰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은 장씨 등에게 조작을 의뢰한 자영업자가 수천 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자영업자 가운데 장씨 측에 무려 2억원을 준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의 상호가 1년간 연관 검색어 앞쪽에 뜨도록 하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장씨는 ‘광고 대행’ ‘인터넷 사이트 제작’ 업체로 위장해 세금도 냈다. 네이버의 검색어를 조작하는 범죄는 지난해 9월 경찰도 적발한 일이 있다. 블로그 검색 횟수를 인위적으로 급증시켜 네이버 화면 위쪽으로 올라가게 하는 수법을 쓴 사람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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