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매년 9월부터 10월은 무척 바쁜 시기이다. 신문사 일도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매주 128페이지나 되는 신문을 만들다보면 월, 화, 수요일은 신문 제작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신문이 발행되는 목요일이라도 곧바로 다음주 신문 제작을 앞둔 중압감이 밀려온다. 특히 최근 몇 주간은 신문사 일에 업소록 제작 업무가 추가되면서 여간 벅찬 게 아니었다. 여기에 동요대회와 두 아이의 생일파티까지 겹치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번 동요대회부터는 트로피를 제작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동요대회에 출전하는 아이들보다 좀 더 큰아이들이 출전하는 청소년 문화축제에만 트로피를 제작했었는데, 2년전에 열린 동요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상장만 달랑 들려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이번에는 큰 마음을 먹고 트로피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트로피 제작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에 거래를 해왔던 회사의 대표가 바뀌면서 가격 협상이 만만치 않아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날 회사 근처에서 운 좋게 트로피를 제작하는 곳을 찾았지만, 트로피에 로고를 새기는 일에 또 며칠을 소비하며 발품을 팔아야 했다. 상장을 만들 종이를 사기위해 오피스 디포에 갔었는데 필자의 건망증으로 인해 어김없이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마이크 시스템을 점검하면서 새 건전지를 사러 갔었을 때였다. 정확한 전압이 기억나지 않아 이 또한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신문 만들고, 애들 픽업해서 학원 갔다가 저녁 차리고, 도시락도 싸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킹 수퍼도 가야 하고, 한국 마트도 가야하고, 할 일은 태산인데 왜 돈도 안되는 이런 일을 벌여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필자는 지난 몇 주동안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대회 전날까지 아이들에게 일일이 리허설 시간을 공지하고, 행사 순서지와 안내문을 만들고 문화센터 청소를 시작했다. 남편과 같이 동요대회 배너를 달고, 심사위원을 위한 책상을 정리하면서 테이블보도 씌웠다. 문화센터 한켠에 놓여있던 의자 100여 개도 꺼내와서 가지런히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필요할까봐 코스코에 가서 물 60병을 사서 문화센터까지 들고 내려가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이때까지도 필자는 내가 미첬지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동요대회는 큰 아들 생일파티 날과 겹쳤다. 다음 날에 하라고 해도 벌써 친구들에게 다 알렸다면서 날짜를 바꿀 수 없다며 성화였다. 할 수 없이 아침 일찍부터 파티가 열릴 지하실을 청소하고, 침대보도 새 걸로 깔아놓고, 밥 해놓고, 만두 튀기고, 샌드위치 만들고, 과자 박스도 준비하고, 수박도 썰어놓고, 포도도 씻어놓고, 맛난 우리 가을 배도 깎아 놓았다.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밥과 김도 잘라 두었다. 각종 음료수는 냉장고에 채워두었고, 필요한 휴지, 티슈, 종이접시, 포크도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피자 6판을 오후 5시까지 배달되도록 부탁해 놓고 동요대회장으로 출발했다. 사무실까지 가는 동안 허기가 밀려오면서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이런 행사를 왜 벌여서 몸도 피곤하고, 시간도 허비하고, 아이의 생일잔치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나하는 짜증섞인 한탄이 이어졌다. 심사위원들과 진행 관계자들을 위해 한아름마트에서 상품권 협찬을 받은 것 외의 모든 비용은 필자의 주머니에서 충당했다. 동요대회는 포커스 문화센터에서 열리니까 대관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문화축제보다 간단한 행사라고 생각해서 개최할 때마다 지출의 대부분은 필자가 책임을 져왔다. 그렇다보니 동요대회는 돈을 버는 행사가 아니라 쓰는 행사다. 여기에다 가뜩이나 바쁜 시기에 열리다 보니 직원들이나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행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불평불만과 피곤함은 동요대회가 열리는 순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마술처럼 말이다. 동요대회 역사상 최다 참가자인 37명의 출전자들과 응원나온 가족들로 인해 문화센터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명한명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해왔는지, 매 순간마다 감동이 밀려왔다. 3시에 본선이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12시부터 와서 리허설을 하는 어린이도 있었을 만큼 리허설부터 본선 경연 못지 않게 그 열기가 뜨거웠다. 가장 고생스러워 보이는 것은 단연 단체팀이다. 똑같은 무대의상을 맞추어 입고, 안무를 통일하고, 아이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져야만 만들어지는 것이 단체팀이다. 이들을 지도한 부모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18번 참가자로 출전한 통합한국학교 단체팀의 이름, ‘어울림’ 처럼 정말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감동과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런 가슴 뭉클한 감동과 동시에 지난 한 달동안 툴툴거렸던 필자가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이 대회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을까, 엄마들의 노력도 얼마나 부산했을까하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필자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흔쾌히 축하 공연을 허락한 제5회 청소년 문화축제 대상 수상자인 브라이언트 서 군을 비롯해, 즐거운 마음으로 행사에 협조해준 심사위원들, 사회자, 행사기획자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발음과 음정으로 한국 동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부모들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 참가자 한명한명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요즘 아이돌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필자가 어린 시절이었던 80년대 말, 우리 부모님들도 가수 박남정의 ‘널 그리며’ 라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랬다. 무슨 노래인지 전혀 모르겠고, 춤만 눈에 들어온다고 말이다. 필자는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박남정의 노래 템포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그렇게 부모가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이젠 부모가 되었다. 가사의 의미를 곱씹으며 들었던 아버지 세대의 트로트, 우리 세대의 발라드와는 천지 차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자녀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욱 그렇다. 점차 미국인이 되어 가는 아이들과 한국의 정서를 꼬옥 안고 사는 부모들은 결국 시간이 갈수록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설령 함께 캠핑을 간다고 해도 그 당시 뿐이다. 여행을 가서도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신기술에 정신이 팔려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더 멀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함께 노래부르면서, 동요대회에 참가해보는 방법을 적극 추천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국 동요를 부른다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즐거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행사를 마치며, “이런 행사를 계속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감사하다”며 필자의 손을 잡아준 한 참가자의 어머니로 인해 행사를 준비하면서 툴툴거렸던 시간들이 떠올라 송구스러웠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는 지난 10년동안 4세부터 6학년까지는 동요대회, 중·고·대학생을 위해서는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명실공히 콜로라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화축제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이런 대회에서 만들어진 경험과 추억이 훗날 부모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