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이자 미 행정부의 실세인 이방카가 지난주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 열도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NHK를 비롯한 언론들은 지난 2일 도쿄에 도착한 이방카의 입국하는 모습부터 의상, 말한마디까지 관심을 보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항 옥상에서 이방카가 탑승한 비행기의 착륙 장면을 중계하는가 하면 호텔에서 만찬장까지 뒤따르며 생중계를 하다시피 했다. 일본 사회는 특히 이방카의 라이프 스타일에 주목하며 열띤 관심을 드러냈다. 방송 중계석에 그의 전신 모형을 세워놓고, ‘이방카는 아침마다 20분씩 명상을 한다’와 같은 소소한 정보도 빼놓지 않고 화두를 만들어댔다. 이방카가 경영하는 의류 브랜드 제품 역시 주문이 폭주했으며, 미우라 루리 도쿄대 정치학자는 “이방카는 많은 일본인에게 공주 같은 존재”라며 “좋은 교육을 받았고 아름다우면서도 부유한 여성이 중요한 사회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일본 여성들에게 놀라운 일로 다가왔다”고 칭송에 가까운 설명을 곁들이기도 했다. 오락·정보 프로그램들도 이방카의 일거수일투족을 화제로 삼았다. 이방카가 공항에 내릴 때 입은 푸른색 코트, 첫날 저녁 먹을 때 입은 흰색 티셔츠, 국제회의 때 입고 간 핑크색 정장 등을 보여주며 "전에 패션모델이었다"고 소개했다. 이방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북아 외교와 안보는) 아베 총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라"고 말했다는 것과 당초 한·중·일을 모두 방문하려고 했으나 한·중은 취소하고 일본에만 들렸다는 얘기 등을 여러 TV 채널이 심야까지 반복해서 방송했다. 또, 방일 첫날 오후 도쿄에 있는 유명한 요정에서 주일 미국 대사관 직원들과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일본 정부는 여경(女警)들로 구성된 특별경계 부대를 동원해 요정 바깥을 지키도록 했다.

           다음날 밤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부부와 도쿄에 소재한 일본 고급 전통 료칸에서 만찬을 가졌는데, 아베 총리는 이날 이방카보다 먼저 저녁 식사 자리에 도착해 료칸 현관에서 이방카를 맞이하며 생일 선물까지 준비했다. 이방카를 향한 극진한 대접은 취임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전에 강력한 ‘접대문화(오모테나시)'를 통해 견고한 미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이방카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러한 대접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대세다. 이방카에 빠진 아베의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방카의 일본 방문은 개인적인 여행을 포함해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여성회의(WAW)에서 강연하기 위함이다. 아베 총리는 실제 이 국제여성회의에 참석해 이방카가 창설에 관여한 ‘여성기업가기금 이니셔티브’에 대해 5,000만달러의 기부 계획을 밝히며 대놓고 구애를 펼쳤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는 “일본은 세계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한 깃발을 들고 이 문제에 대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베가 제시한 한국 위안부 배상문제와 관련한 지원금은 고작 100억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방카의 옆에서 세계 여성의 권익 신장을 외친 그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방카 앞에서는 굽신하고 한국 여성 앞에서는 당당함을 넘어 뻔뻔함으로 일관해온 아베의 이중성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다. 아베는 이방카 방문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정작 방문 목적인 국제여성회의의 객석은 절반 이상이 텅빈 채 진행되었다. 그래도 아베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카에게 수백억원의 돈으로 환심을 사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는 위안부 합의 때 보여준 소극적인 태도와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 유산 등재가 보류되었다. 인권 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발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 규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를 압박한 일본 정부의 저지를 이겨내지 못했다. 유네스코 등재 말고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 끝난 일로 만들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는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2년전 있었던 박근혜 정부와의 위안부 합의가 이런 시도의 핑곗거리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크게 2가지를 권고했다. 보상을 포함해 포괄적이고 영속적인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철저히 조사해서 책임자를 재판에 넘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12월에 이미 끝난 문제라고 답변서를 보냈으며, 지금 시점에서 구체적인 검증이 극히 곤란하다고 대응하면서 세계기록 유산 등재는 박근혜 정부와의 합의에 반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말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해 한·미·일 정상 간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반성없는 일본의 오만방자함이 한 몫을 한 것이다. 국민 정서상 한미동맹은 굳건히 해야겠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제한적 협력관계로 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믿었던 미국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은 일본 위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 불과 8일 만에 뉴욕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고, 정부 출범 후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무려 16회 전화 통화를 통해 과거 레이건-나카소네, 부시-고이즈미 밀월 관계에 버금가는 우정을 쌓았다. 그런데 양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의 대부분은 미·일 문제가 아니라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의견 교환이었다. 즉 양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배제하고 미·일의 안보적 이해로 편중시켜 놓았다. 트럼프 정부는 조그만한 국가인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을 당하는 것에 위신이 깎이고 굴욕감을 참지 못해 온갖 험한 말을 쏟아냈다. 이러한 트럼프의 반이성적인 행동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저러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진정 우리를 동맹국이고 지킬 가치가 있다면 북한이 날뛰는 이러한 시점에서 FTA 재협상으로 뒷통수를 때릴 수가 없다. 말이라도 한국 국민을 안심시키고 안보에 관심을 보이며, 친미 분위기를 조성하는 제스처를 썼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에만 관심이 있고 동북아에서는 일본만 잘 건사하면 되고 중국과는 화평을 유지하면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공식석상에서나 우방이라고 떠드는 미국과 일본 어디에도 한국은 없어 보인다.  아베는 지난주 내내 미국과의 우호적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이방카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트럼프의 방일을 위해서는 일본 역사상 최대규모인 2만여명을 동원해 24시간 경비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세계 랭킹 4위인 자국 프로골퍼와 함께 극진한 골프 접대로 모시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납치자 가족과의 면담으로 아베 총리를 배려하는 등 의기투합 장면을 한껏 연출했다. 이런 일본에 비해, 서울은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팽배한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정부는 중국과 사드 합의를 하며 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 방어(MD), 한·미·일 동맹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벌써 중국 관영 매체는 한국이 이 '3불' 을 중국에 약속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한·미 동맹과 북핵 대처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 직전에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도 불길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떼어놓을 묘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국과 한 약속도 금새 바꿀 수도 없는 형편이다. 우리는 이번에 이방카 앞에서 굽신하고 한국 여성 앞에선 뻔뻔한 아베의 이중성을 확실하게 보았다. 그러니 이제 안보 게임은 그만하자. 애걸복걸도 그만하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북핵 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 우군(友軍)이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정부는 중심을 잡고 협력해 줄 것은 화끈하게 해주고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탄탄하게 만들어놓은 공조체제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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