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연일 이어지는 구속과 압수수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총책임자 3명이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건넨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중 2명이 구속되었다. 이로써 검찰의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로 구속된 사람은 20명이 넘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고위 간부들은 물론 국방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대외전략비서관을 지낸 사람들도 구속되거나 출국 금지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도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지난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가정보원에 민간인과 공무원의 불법 사찰을 지시하고 사찰 결과를 비선(秘線)으로 보고받은 혐의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우 전 수석은 작년 7월 이후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것만 벌써 네 번째다. 또, 검찰은 그와 함께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에 개입한 혐의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어 검찰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고, 같은 당 원유철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규명하겠다며 평택의 지역구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그리고 효성그룹도 압수 수색했다. 효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불리는 회사다. 명분은 총수 일가의 비자금 혐의다.

         문 대통령의 취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조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성과는 썩 가시적이지 못하다. 검찰이 전 국정원장들을 구속하면서 내건 사유를 보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의 돈(특수활동비)을 청와대에 줬고, 군(軍)의 사이버 기능을 정치 댓글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개인적으로 착복 내지 횡령을 했거나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없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법정에서 판가름나겠지만 그들은 과거 전임들이 오랫동안 관행처럼 해온 대로 한 것뿐이고, 댓글 문제도 전체 사이버 활동의 0.5%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또, 우병우 전 수석은 지난해 11월 처가와 넥슨의 강남역 부동산 거래 의혹 등으로 검찰에서 첫 조사를 받은 후 올 2월과 4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혐의 등으로 연이어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청구됐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그와 엮여 있던 최윤수 처장의 구속영장 또한 지난주에 기각되었다. 결과는 늘 검찰의 실패이다. 더구나 이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는 박근혜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로 확산되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지난주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특활비로 21억을 유용했다며 압수수색을 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여론조작 활동에 개입한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했다가 열흘만에 석방했다. 이는 MB 정부를 향해 공식적으로 칼을 겨눈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정황이다. 문재인 정권의 노선과 정책들이 처음에는 '적폐'를 겨냥한 정의로운 일로 포장되었다가 점차 정치적 보복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공격의 대상인가 싶더니 이명박 정권의 것도 뒤지고 엎고 하는 것을 보면서, '박근혜 싹 자르기'와 '노무현 원수 갚기'에 집중하는 것 같다. 적폐 수사를 위해 검찰 안에서만 무려 60여 명 검사를 투입되면서 마치 수사 공화국이 된 듯하다.정치권 사정이 더해지면서 기업 수사도 보태지고 있다. 급기야 삼성의 이건희 회장까지 조사할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지하경제 양성화를 명분으로 '미신고 역외소득 재산 자진신고제도'를 운영했다. 다시 말해 해외에 숨긴 재산을 자진 신고하면 과태료를 면제하고 형사 처벌을 경감해주는 제도인데, 이건희 삼성 회장이 당시 해외 계좌를 자진 신고했던 정황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건희 회장은 조세범 처벌법이나 외국환 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는게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또, 이 과정에서 삼성은 내야하는 세금을 작게 냈다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박근혜 정부와 친밀했던 삼성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한국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회사 수익의 절반이상이 일본으로 보내지는 롯데와는 다른 차원의 기업이다. 미국의 대형 홀세일 매장인 코스코를 포함한 베스트바이 등 전세계 매장에서 판매되는 삼성의 셀폰과 TV를 보면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요즘 보면 전세계가 애용하는 삼성을 한국 정부만 밟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가 손실액에 해당하는 세금 공제 혜택을 활용해 약 18년간 소득세 납부를 피해온 그의 비리를 알고도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또, 조선시대 세종은 발명가인 장영실이 천문기기를 제작한 공을 인정해 그를 면천했고, 상의원 별좌에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왕은 국가적 차원에 큰 이로움을 주었다고 판단해 결정을 내렸다. 아마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삼성의 이건희는 조선시대 태어났다면 국가 수훈상이라도 받지 않았을까. 대기업을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른 기업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관행들을 무조건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애써 트집을 잡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기업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세금을 제대로 내고, 정부는 적절한 수사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도 병행해 줄 필요가 있다.

          700만 재외동포들이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의 대외적 위신도 고려해야 할 때이다. 요즘 필자는 연말연시를 맞아 주류 정치인들과 송년회 자리를 하는 경우가 잦다. 그때마다 사상 초유의 사태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삼성의 왕자 이재용의 구속은 으례 회자되는 얘기가 되었다. 박 대통령의 탄핵보다 미국인들은 삼성이라는 기업에 우리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삼성가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드라마까지 제작하겠다고 나선게 아닐까. 사건 하나하나마다 수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죄가 있으면 잡혀가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도 탄핵되고 교도소에 갇히는 나라에서 그깟 전직 국정원장이나 국방장관의 구속이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의 잘못은 이른바 지휘 책임이지만 그 부하들의 잘못은 명령 복종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계기로 정치 보복 논란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국정원 간부들을 구속하고 MB를 검찰에 불러 세우겠다면 이또한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 될 수 있다. 이만하면 박·이 두 전 대통령은 이미 잡을 만큼 잡은 것 아닌가?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까지는 '대한민국이 현직 대통령도 끌어내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구나'하는 경외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겠지만, 사리사욕의 죄도 아니고 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실책을 가지고 안보·정보 수장을 구속하는 것은 동맹·우호 국가들에게 우리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북한은 '공적'처럼 다뤄왔던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구속 되었을 때 '손 안 대고 코 푼' 기분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매 5년마다 정권이 바뀐다. 오늘 우리가 어제의 것을 보복하면 5년 후 내일의 세력으로부터 또 보복당할 수 있다는 단순 산술을 잊어버린 것일까? 현 정부가 하는 일들이 다음 정권에서 적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적폐청산은 당연한 절차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발되면 국민들은 식상해 할 것이고, 처음의 의도 또한 흐려질 수 있다. 이러다간 이승만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적폐를 찾아야할 지도 모른다. 매일 같이 구속되는 부패국가의 이미지보다 강건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어주는 일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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