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이렇게 탄생됐다

박지성 이렇게 탄생됐다
허정무, 10년전 가능성 하나로 한국축구 ‘국보’를 뽑다

◇허정무 감독
1999년 겨울 울산의 한 축구경기장. 허정무 당시 시드니올림픽대표팀 감독은 대표팀과 명지대 축구부 간 연습경기를 지켜보다 한 선수에 주목했다. 20대 초반의 또래 선수 중에 볼을 잘 찬다는 올림픽대표팀 선수 5명을 제치고 연습파트너인 명지대 축구 선수가 멋진 골을 넣는 것이 아닌가. 박지성이었다. 허 감독은 연습경기를 10여차례 한 뒤 능력과 가능성만 보고 감독 직권으로 2000년 그를 올림픽대표팀에 합류시켰다. 그리고 10년 후. 박지성은 12일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허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팀의 주장으로 동료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게 차분하게 경기하도록 다독이는 한편 멋진 쐐기골까지 터뜨려 승부를 결정지었다. 체격과 기술이 앞서는 유럽팀을 거의 완벽하게 제압한 이날 경기는 학연과 연고주의 극복이라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즉 박지성이 무명 선수일 때 오직 실력과 가능성만을 보고 올림픽대표팀으로 발탁한 허 감독의 안목이 있었기에 거머쥔 승리였다.

허 감독은 출신 대학을 따지지 않고 왜소한 체격으로 지역 연고 프로팀에도 뽑히지 못하고 가까스로 명지대에 합격한 박지성을 가능성만을 보고 발탁했다. 박지성은 허 감독의 발탁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활약한 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월드컵대표팀에도 뽑혀 대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박지성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현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은 “허 감독이 실력과 가능성을 보고도 당시 박지성을 뽑지 않았다면 오늘의 박지성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지성 외에도 그리스전 수비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수비진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한 이영표도 올림픽대표팀과 건국대 경기 과정에서 허 감독에게 발탁된 케이스다. 허 감독이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실력만 보고 뽑은 박지성과 이영표 등은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 됐고, 결국 허 감독에게 한국인 감독 월드컵 첫 승이란 영예를 안겼다. 학연과 연고주의는 축구 등 스포츠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는 점에서 한국 축구의 시도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과도한 의미 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박지성의 발탁과 성장과정은 사회 각 분야에서 학연과 연고주의를 타파해야 할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리스전 결승골 이정수, 곽태휘 몫까지 해냈다
"곽태휘 몫까지 해내겠다" 여러 면에서 스타일도 비슷하고, 같은 중앙 수비수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됐던 이정수(가시마)와 곽태휘(교토). 하지만, 곽태휘는 지난달 말,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안타깝게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아쉽게 낙마한 동료를 위해서라도 이정수는 더욱 이를 악물었고, 그는 남아공월드컵 첫 경기에서 '골 넣는 수비수'로서의 본능을 보여주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정수가 12일,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예선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전반 7분, 기성용의 측면 프리킥을 그대로 오른발로 밀어넣으며 골을 뽑아내 '골 넣는 수비수'의 명성을 또 한 번 보여줬다. 이정수는 그리스전에서 풀타임을 뛰면서 파트너 조용형(제주)과 안정된 수비로 파상공세를 잘 막아낸 것은 물론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를 그대로 득점으로 만들어내며 첫 승리에 일등 공신이 됐다.

지난 2003년, 경희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안양 LG에 입단한 이정수는 2006년, 수원에 입단해 차범근 감독 밑에서 부쩍 성장하며 간판 수비수로 거듭났다. 중앙은 물론 측면 수비를 맡는 것도 가능해 다재다능한 실력을 갖춘 이정수는 지난 2008년 3월,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북한과의 월드컵 3차 예선에 첫 A매치에 나설 수 있었다. 수비수임에도 공격 본능을 자랑하면서 지난해 9월, 호주와의 A매치에서 데뷔골을 넣은 이정수는 동료 곽태휘와 더불어 '골 넣는 수비수'로서 존재감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잦은 부상 때문에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정수는 처음 주어진 월드컵 출전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마침내 남아공월드컵 한국 선수 첫 골을 넣으며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골을 넣는 순간 그보다 먼저 '골 넣는 수비수' 칭호를 받은 곽태휘가 잠시 떠오를 만큼 이정수의 골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했다. 본업인 수비수로도 제 몫을 다해내며 원정 첫 16강을 향한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디딘 이정수. 남은 예선 2경기에서도 완벽한 수비 능력과 공격 본능으로 한국팀 전력에 또 한 번 보탬이 되는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SPN  "그리스전 최고의 선수는 박주영"
박주영(25)이 그리스전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한국은 12일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예선 B조 1차전에서 이정수의 결승골과 박지성의 쐐기골을 묶어 2-0으로 완승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인 ESPN은 이날 경기의 간단한 평가와 함께 박주영을 최고의 선수, `Man of the Match` 로 꼽았다. ESPN은 박주영에 대해서 "박주영은 공격수로서 외롭게 싸웠지만 상대팀 그리스가 어려움을 겪을 만한 문제를 많이 안겨주었다"고 묘사했다. 이어 "차두리가 정확한 패스를 던져주었을 때 중요한 기회를 박주영이 많이 놓치긴 했지만 그리스는 그들의 공격선에도 박주영 같은 선수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라고 설명하며 후반 17분을 비롯해 박주영이 좋은 기회를 많이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박주영의 활약을 높이 샀다.

또한 한국 대표팀에 대해서는 "신체적으로 훌륭하며 저돌적인 팀"이라고 묘사하며 "2002년 4강진출한 이후로 한 없이 발전해 왔다"며 좋은 평가를 내렸다.

"우리는 눈빛으로 말한다"
박지성, 박주영, 그리고 이청용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다. 오직 눈빛 하나면 모든 것이 통한다. 한국 축구대표팀 공격을 이끄는 박주영(25, AS모나코),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22, 볼튼) 등 '유럽파' 3명은 그라운드에서 눈빛으로 말한다.

한국대표팀의 공식적인 포메이션은 4-4-2. 1차전 그리스전에서 보여줬듯 박주영과 염기훈 투톱이 허정무호 공식 포메이션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 포메이션은 많은 공격옵션 중 하나일 뿐이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박주영의 파트너는 수시로 바뀐다. 굳이 원톱, 투톱 가리지도 않는다. 박지성과 이청용 역시 공격수로 올라와 박주영의 파트너가 될 때가 있고 박주영이 윙어로 내려갈 때도 있다.

이런 공격수 스위치 전술은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완벽한 내용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그리스전에서 박주영-염기훈-박지성-이청용이 서로의 자리를 수시로 바꾸는 스위치 전술이 시행됐고 이들은 매섭게 그리스 수비를 공략했다. 결국 2-0 승리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

15일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에서 만난 박주영에게 스위치 시스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박주영은 "대표팀 포메이션이 원톱일 때도 있고 투톱일 때도 있다. 그리스전에 나갈 때도 투톱으로 나갔지만 원톱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포메이션은 경기 중 항상 바뀐다. 허정무 감독님도 돌아가면서 스위치 플레이를 하라고 강조한다. 포메이션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 공격진은 어떤 자리를 가도 제 몫을 해낸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기적으로 자리를 바꾸며 움직이는 스위치 시스템.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리를 바꾸는 것일까.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혹은 벤치에서 때에 맞게 지시를 내리는 것일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꾸자고 미리 약속을 정해놓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일까.

정답을 박주영에게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눈빛'이었다. 벤치에서 따로 지시가 나오지도 않고 그라운드에서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이들은 단지 눈빛만으로 대화한다. 그리고 눈빛으로도 서로의 역할을 알 수 있다.박주영은 "(이)청용이와 (박)지성이 형이 공격수로 나갈 때도 있고 내가 사이드로 빠져나가는 상황도 있다. 특별히 지시가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약속도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누가 그 자리에 먼저 가 있으면 내가 다른 자리로 간다"며 스위치 시스템의 비밀을 전했다.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호흡이 맞으며, 마음이 통한다는 얘기다. 이들의 한 마음이 이제 아르헨티나를 겨누고 있다.


'페어 플레이상'
경고 없는 나라..한국과 북한뿐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축구대회에서 32개 출전국이 거의 한 경기씩 치른 가운데 한국과 북한이 경고가 없는 깔끔한 플레이를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28개 나라가 1차전을 마쳤으며 미국과 프랑스, 잉글랜드, 호주는 경고를 세 번이나 받았다. 레드카드는 네 차례 나왔으며 호주, 우루과이, 알제리, 세르비아가 한 번씩 받아 10명이 싸우는 불리한 조건을 겪어야 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경기를 치른 나라 가운데 옐로카드를 한 번도 받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북한뿐이라는 사실이다. 네덜란드, 독일 등 축구 강국들도 경고를 두 차례나 받는 등 1차전에서 이겼지만 출혈이 적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남북한의 '페어플레이'는 눈에 띈다. 특히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잘 싸우고도 경고 한 장 받지 않은 북한의 경기 매너가 돋보인다. 이 경기에서는 오히려 브라질이 후반 43분에 하미리스(벤피카)가 경고를 받았다.

반칙 수에서 한국은 그리스와 첫 경기에서 14개를 저질러 많은 쪽에서부터 따져 공동 13위다. 북한은 10개로 공동 23위. 아직 거론하기 이르지만 남북이 첫 경기를 경고 없이 끝내면서 페어플레이상 수상 가능성에도 눈길이 쏠린다. 이 상은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팀 가운데 반칙, 경고, 퇴장 등의 기록을 국제축구연맹(FIFA) 페어플레이 위원회가 정해 놓은 채점 방식에 따라 점수를 매겨 가장 깨끗한 플레이를 한 나라에 준다. 물론 이 상을 의식해 반칙을 아끼는 일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일단 원정 16강이라는 1차 목표를 이루기만 하면 지금까지 추세로 보아 페어플레이상 수상에도 욕심을 내 볼만한 상황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벨기에가 페어플레이상을 받았고 2006년 독일 대회에서는 브라질과 스페인이 공동 수상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