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는 백악관 성명을 통해 "이제는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할 때"라며 "이는 옳은 일이며 이미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어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에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준비를 바로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사관이 통상적으로 각 국가의 수도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발표는 곧 이번 공식 선언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에서는 분노와 우려가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에 단단히 화가 난 아랍·이슬람 국가에서는 주말내내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영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교황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선언에 반대의사를 천명했다. 이 밖에도 요르단, 터키,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에서도 반미시위가 잇따랐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번 선언에 대해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를 뜻하는 곳으로,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과 아랍 간 역사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가 모두 자신들의 수도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곳이다. 위치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에 위치하고 있지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예루살렘의 소유권이 복잡하게 된 것은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이전에 수천년에 걸친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근대 이후 영토가 확정되는 시기의 이야기만 살펴보면 유엔이 1947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이 지역을 유대인과 아랍인,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결의안으로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국제관리 체제로 남겨졌다. 그런데1967년 이른바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아랍군을 격파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던 동쪽의 예루살렘까지 점령한뒤 1980년에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수도로 선포함으로써 분쟁이 격화되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행태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였다. 다만, 친 이스라엘 정책을 계속해 오던 미국만이 1995년 예루살렘 대사관법이라는 법을 제정하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도록 결정하였지만, 미국 역시도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안해 6개월간 이를 보류하는 유예조항을 두었고 지금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6개월마다 그 보류를 갱신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하면서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일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법상 예루살렘은 왜 이스라엘 수도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글자로 읽을 수 있는 국제법 법전은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인정하고 지속해온 상태' 자체가 국제관습법으로 암묵적으로 인정이 되어왔고, 현실적으로는 UN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기구의 결의가 바로 일반 관행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UN은 1947년 국제법상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했다. 이는 지난 70년간 지켜진 국제사회의 암묵적 합의였다. 지금까지 모든 국가가 이를 준수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70년 만에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국제관습법과 UN 결의로 지켜지던 국제사회의 합의를 단번에 깨버린 것이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처하던 미국이 이번에는 국제사회의 룰을 지키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과 같다.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관측이 나온다. 이중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을 확고히 잡기 위해 이번 선언을 내렸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미국 유권자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은 기독교도들은 53%가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자금줄이 대부분 이스라엘 유대인 단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대인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역시 유대인으로 자문변호사 출신인 제이슨 그린블랫 국제협상 특사의 영향을 받아 이번 선언을 내렸다는 진단도 있다. 이들은 정통 유대교 신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량급 인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찌 보면 추진력이 대단한 정치가라는 평도 낼 수 있다. 본인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을 막 밀어부쳐서 올해 내세운 목표들 중 오바마 케어 폐지만 빼고 거의 달성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을 하자마자 자신이 공약했던 반이민 행정명령, 무슬림 국가 출신의 미국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내렸고 오바마 대통령이 내렸던 행정명령 DACA도 폐지했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의 운명을 결정할 세제 개혁안이 하원과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대동소이한 부분들에 대한 보완 후 다시 상하원에서 표결을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남았지만 표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 개혁 전투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번 이스라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만드는 것도 트럼프의 공약 중 하나였다.

           사실 미국의 대통령이 뜬금없이 다른 나라의 수도를 공식 인정한다는 선언에 다소 의아했다. 자기의 수도를 자기들이 정해야지, 미국 대통령이 정해준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수도이자 사실상 국제 분쟁 지역이다. 여기에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것으로 선언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형상이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세계에 암묵적으로 깔려있는 미국에 향한 사대주의가 아닐까 싶다. 굳이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의 세자 책봉이 중국의 황제의 승낙을 받아야만이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던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놓고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세계 각지의 무슬림들의 반미·반이스라엘 시위가 격화되고 유혈사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런 폭탄 선언을 했는지 명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오지랖 넓은 행동이 미국의 안보와 국제 평화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왕 불씨에 끓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으니 차라리 예루살렘을 둘러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첨예한 갈등과 역사적 대립을 고려해서 두 나라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세계 최강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진 미국이 현재 예루살렘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쟁을 일단락시키고 평화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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