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2월 9일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준비가 한창이다. 그런데 세계는 왜 대한민국의 평창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동선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비핵화 없이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북한을 밀어부치던 미국의 트럼프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김정은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다소 주춤하더니, NBC 간판 앵커는 평창이 아닌 평양을 방문했고, IOC 위원회는 규정상 노선영의 출전은 불가하다고 통보하더니, 북한의 아이스하키팀은 한국팀과 함께 뛰어도 된다며 유례없는 팀결성을 허락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은 상식의 도를 넘어 북한에게 극진한 환대의 정점을 찍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북한에 대한 대우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보인다. 이번 올림픽이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는 말이 나돌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 제재로 굶어 죽게 된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단일팀을 만드네, 응원단을 보내네, 문화 행사를 여네 하며 변죽을 울리다 인민군 대좌 하나로 남한 전체를 홀려버렸다. 그래봤자 핵 위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평화가 정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선이 명·청에 한 사대(事大)보다 더 북한에 알랑거리며 끌려다니고 있다. 예술단 공연도 한다고 해놓고선 또 못한다고 하더니, 바로 24시간 후에 다시 하겠다고 하고, 금강산 합동 전야제 공연도 올림픽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철회한다는 통보를 한밤중에 일방적으로 보내왔다. 이처럼 북한이 변죽을 부리며 국가적 모독 행위를 매일같이 하고 있어도 우린 속수무책이다. 지금쯤 북한은 ‘핵을 보유한 국가로서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며 내심 의기양양해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권은 힘들게 따낸 평창올림픽임에도 불구하고, 왜 갑자기 북한의 무임승차를 이토록 부추기는 것일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1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실무회담 결과 북측에 마식령 스키장 훈련과 올림픽 전야제 금강산 개최, 개회식 공동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을 제안해 합의문에 반영시켰다. 북은 230여 명의 응원단과 30여 명의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도 파견하기로 했다. 친북 단체인 조총련 응원단 활동까지 보장키로 했다. 평창에 오는 북한측 선수는 고작 10여 명인데, 삼지연 관현악단 140명을 합쳐 약 700명의 북한 선전요원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셈이다.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은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기로 했다. 원산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이 자랑하는 작품이라지만 국제 대회를 치를 수준이 되지 않는다. 외국 선수단도 북한 마식령 훈련장을 달가워할 리 없다. 북한에서 정치 선전 플래카드 한 장을 뗐다는 이유로 미국인 대학생 관광객 오토 웜비어에게 어떤 비극이 닥쳤는지 모두가 봤다. 올림픽 전야제 장소로 합의된 금강산은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이 피살된 곳이다. 그리고 올림픽 전야제를 왜 북한 땅에서 하는 것일까. 북측 응원단, 선수단, 대표단이 내려오는 경의선 육로는 개성공단 운영에 이용되던 길이다. 북의 핵무장 때문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막혀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남북 단일팀 논란과 관련,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은 아니다"라고 한 것도 부적절하다.

    마치 공부도 못하면서 왜 시험에 연연하느냐는 식이다. 올림픽을 눈앞에 둔 선수들에게 할 말이 아니다. 올림픽만 바라보며 오랜 시간 피땀을 흘렸던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북한판 낙하산’에 밀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단일팀을 추진하면서 대표팀에는 알려주지도 않았다. 캐나다인 대표팀 감독은 "충격"이라고 했다. 무엇이 우선인지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이 특권과 반칙을 보면서 분노하고 있다"며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올림픽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북 선수들이 자격 없이 끼어들어 피해를 주는 것은 바로 반칙이자 상처이다. 또, 민주당은 올림픽 개회식에서 우리 선수단이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는 여론에 "평창을 냉전 올림픽으로 만들자는 주장" "한반도기를 색깔론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힘들게 유치한 올림픽에서 우리 국기를 들어야 한다는데 이것이 왜 '냉전'이고 '색깔론'으로 치부하는지 이해되지 안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기를 든 9차례 전례가 있다. 남북 첫 단일팀이 구성된 1991년과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처음 공동 입장한 2000년에는 북이 핵실험을 하지도 않았고 미사일을 쏘지도 않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한반도기 공동 입장 후 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 장병을 떼죽음시켰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공동 입장 직후 무더기 미사일 발사와 첫 핵실험을 감행해 민족을 핵 재앙으로 몰아넣었다. 2007년 동계아시안게임 한반도기 이후엔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가 한반도기를 든 것은 북이 핵을 버리고 남북이 화해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북에게 한반도기는 우리를 기만하는 도구였을 뿐이었다.
 
    남북이 접촉면을 최대한 넓힌다는 데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지적해야겠다. 이 모든 게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남쪽이 치른 비용이 작지 않다. 북한의 대규모 선수단을 초청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유엔 결의 위반 논란이나 대북 경제제재가 무력화될 수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공동입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남남갈등과 국론분열은 크다. 반면 북한은 그야말로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 엊그제까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무수히 쏴 대던 깡패국가에서 하루 아침에 평화 전도사로 돌변했다. 남북이 육로로 왕래키로 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할 명분도 챙겼다. 선수는 열 명 남짓에 불과하면서 응원단, 예술단 등 딸려오는 식구가 수 백 명이다. 북한이 대화 중간에 내놓은 여러 성명을 보면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한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러면서도 비핵화에 대한 논의는 애초부터 철저히 배제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 없을 것이다. 몇해 동안 저들이 걸핏하면 미사일 쏘고 핵 터뜨리고 하는 통에 1년 내내 한반도가 일촉즉발이었다. 잔칫집이 그 모양이니 손님이 선뜻 오려 하지 않았다.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만 놓는 꼴이었다. 그러더니 무슨 꿍꿍이인지 갑자기 도우러 오겠단다. 다 차려진 상을 엎진 않을지 미심쩍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게 아니면 제 잇속만 차릴 꿍꿍이다. 그러니 기껏 쑨 죽을 개한테 줄 수는 없다는 게 국민 일반의 대북 정서이기도 하다. 유엔 제재로 궁지에 몰린 북한에 굽신대며 간만 키워주는 형태는 중단되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대우가 극진할수록 이들은 더욱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 떠들썩했던 남북한 단일팀이니, 훈련장이니, 금강산 축제니, 예술단 방한에 태권도 시범단의 사전 점검단이 올 때마다 한반도를 들썩거리게 만든 건 사실 한국 정부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민의 정서와 상관없이 북한의 입장을 떠받들어 이만큼 휘둘렸으면 충분이다. 남은 것은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 국민과 대한민국 선수들을 독려해 합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해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오자 우리 쪽에선 남북 교류 구애 러시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동시 입장을 공개 제안했었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구체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를 단일팀 종목으로 점찍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분단 이후 중단된 경평축구 재개 희망을 전했다. 남북 체육회담을 어서 진행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장웅은 '스포츠 위에 정치 있다'는 한마디로 모든 사태를 정리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정곡을 찔렀다. 정치적 환경이 마련되기 전에 스포츠 교류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이때도 우리는 체신없이 설레발을 치면서  '스포츠 행정 9단' 장웅에게 KO패를 당한 것이었다. 물론 평창올림픽은 평화의 축제가 돼야 한다. 남북이 어울릴 수 있다면 더 좋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스포츠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이제 우리도 평창올림픽, 넓게는 스포츠를 통해 남북한이 화해한다는 환상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그건 스포츠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가 할 일, 스포츠가 할 일이 따로 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