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E.N.Lorentz)가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 낸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몇 일 뒤 미국 뉴욕에서는 허리케인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이는 지구상 어디에선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작은 어떤 시도나 요인들이 움직여 질 때 예측하지 못한 어떤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또한 작은 실수 하나가 엄청나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사랑과 섬김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현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전도자라 불리우는 빌리 그레엄에게 누가 복음을 전해 주었을까? 적도의 성자라 일컫는 슈바이처 박사에게는 누가 그 어둠의 땅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심어주었을까? 인도 캘커타의 성녀였던 마더 데레사에게 누가 그 섬김의 사랑을 가르쳐주었을까?

   분명 어느 누군가에 의해 작은 모습으로 전해 받았을텐데 이 작은 복음의 능력이 나비효과가 되어 세상을 감동시키는 영적인 영향력과 감동을 낳은 것입니다. 수년전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지역에서 복음과 의술로 황량한 그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다가 암으로 숨졌던 고 이태석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서두에 이런 글이 소개되면서 영상이 시작됩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는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의 끝에서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한국에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아프리카를 섬긴 슈바이처 박사, 그리고 10남매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신 어머님의 고귀한 사랑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향기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나비효과가 아닐까요?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수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어떤 파도를 만들어 낼지 기대가 됩니다. 지금 우리가 전하는 복음, 지금 우리가 밟으며 기도하는 이 땅, 지금 우리가 섬기며 나누며 사랑하려는 몸짓, 작은 신앙공동체이지만 예배에 목숨거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손짓 - 이 모든 것이 작고 연약한 나비의 날개 짓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날개짓이 언젠가 우리가 꿈꾸는 영적부흥과 이 세대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는 날개짓이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한마디의 기도와 사랑의 날개짓은 그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가치있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앞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가족이 변화 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 런지!”  살다보면 마지막순간에 깨달은 지혜가 아니라 좀더 일찍 깨달아 알았더라면 하는 진리가 많이 있는데 바로 이런 글이 주는 교훈입니다. 요즘 나이가 들어가는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자꾸 나에게로 돌려집니다. 온세계와 열방을 품었던 가슴이 점점 오그라져서 이제는 내 자신의 심장 하나 살리기도 벅차게 느껴지는 내가 보여 집니다. 빌리 그레엄이나 무디같이 수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했던 복음전도자처럼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제 평생에 한 사람의 영혼이나 제대로 구원할 수 있을런지 정말 의문입니다. ‘성령님에 이끌려 살았던 사람’이라는 내용의 묘비명을 세워 주기를 바라면서도 그 소원과는 너무 먼 당신처럼 살고 있기에 무지하게 창피한 느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하며 외쳤던 탄식소리가 내 안에서도 동일하게 외쳐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진리를 누군가 죽기 직전에 깨닫고 지금 제게 알려줘서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그 길을 걸어보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지금 제게 주어진 환경이 감사할 뿐입니다. 지금 저와 함께 예배하며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성도들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지금 곁에 있는 아내와 가족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제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이 덴버의 공기가 참 달콤합니다. 저를 지금 이곳에 머물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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