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뉴스는 19금이어서 보고 있자면 낯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현직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한국판 '미투 운동(#MeToo 나도 당했다)'이 한 달을 넘어가며 계층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 문화계로, 그리고 체육계와 종교계, 정치권까지 태풍급으로 퍼지고 있다. ‘미투’ 바람은 원래 작년 10월 미국에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및 성폭력 고발로 시작되어 미국 전역을 강타중이며,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대륙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은 서 검사의 고백이 시발점이 되어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인들만 30여명에 이른다. 급기야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투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면서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 의사를 확인하고,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6월 이후의 사건은 고소 없이도 적극 수사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서 검사의 폭로로 불이 붙은 ‘미투’가 확산된 계기는 최영미 시인의 폭로였다. 최영미 시인은 “자신의 입이 더러워질까봐 폭로하지 못했던” 고은 시인의 성추행 행태를 고발했다.

    최 시인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이렇다. 1993년경 서울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고은이 술집에 들어왔고, 그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의자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문인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그렇지만 고은은 그 뒤로도 승승장구하며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렸다. 심지어 고은은 국어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시인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기념관도 가지고 있으며, 각종 문학대상을 휩쓸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민족 지성이자 풍부한 감성을 지닌 시인이며 소설가이었고, 수필가이었기에 이번 폭로는 가히 충격적이다. 진보예술계의 대표 얼굴이었던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폭로 또한 온 대한민국을 들끓게 했다. 여배우들에게 안마를 시키면서 성추행에 이어 성폭행까지 했던 추악한 이면이 폭로됐고,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어느 여배우는 낙태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흥행 배우로서 ‘천만 요정’으로까지 불리는 오달수씨는 처음에 부정하다가 배우 엄지영씨가 오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나서면서 이제는 발뺌이 어렵게 됐다. 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유명 배우 조민기씨는 학과 학생들을 오피스텔로 불러 성추행했다는 폭로에 부인으로 일관했지만, 잇따라 피해자들이 나타나자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유명 영화배우이자 연극배우로 영화제 대표까지 맡기도 했던 배우 조재현씨는 방송 스태프를 성추행한 의혹을 시인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사죄했고, 배우이자 교수인 한명구씨도 여학생 성추행 사실을 시인했다. 시사만화계의 대가로 꼽히는 만화가 박재동씨는 주례를 부탁하러 온 후배작가를 성추행했으며, 유명한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에까지 등장했던 사제 한 모 신부가 2011년 아프리카에서 여성 선교단원을 성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이 밝혀지면서 천주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명지대학 연극과는 남자 교수 전원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여 조사를 받거나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죄가 한꺼번에 덮힐만큼 강력한 한방은 바로 충남도지사 안정희씨의 비서 성폭행 사건이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당시 볼에 뽀뽀를 했던 민주당 대표 진보좌파세력의 젊은 정치인이었다. 이번주에 밝혀진 그가 가진 두얼굴은 온 대한민국을 경악케 했다.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비서의 폭로가 있었던 당일 오전 그는 “우리는 오랫동안 남성우위 사회에 살고 있었다. 남성중심에서 벗어난 이런 미투 운동이야말로 인권 실현을 위한 것이며, 미투 운동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마지막 과제”라며 미투운동을 적극지지했다. 하지만 그가 미투운동이 전개된 날에도 정무비서를 성폭행 한 사실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그의 이중성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노무현비서실팀장,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장,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지내면서 도덕성을 최우선시 해야하는 사람이었기에 문화 예술계에 연루된 이들과는 또다르게 더 강력한 잣대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같았다. ‘사실 인정’과 ‘공개 사과’등 피해자들의 요구는 분명했지만, 대부분은 해당 내용을 부인하거나 주어와 내용이 빠진 모호한 공식입장 발표로 일관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갓 들어간 회사에서 회식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갈비집의 옆으로 길쭉한 식탁에 다들 앉았는데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 상무이사라는 사람이 동석을 했다. 그런데 폭탄주 두어잔을 마시더니 옆에 앉은 여직원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그녀의 등을 두어번 쓰다듬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다시 허리와 가슴 중간 쯤을 감싸 앉는 자세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정말 친한 사이여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의 술자리에는 다른 여직원이 희생양이 되었다. 몇달 후 그는 이직을 했지만 그 후로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던 남성들을 가끔 본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추잡한 아저씨들이 회사에 한둘은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넘어갔고, 당한 이들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이 무릇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미투 운동은 마른 잎에 옮겨 붙은 불씨마냥 들불이 되었고, 이젠 성난 불길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가면 뒤에 숨어 약자를 유린해왔던 권력자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는 경악과 충격으로 들끓고 있다.

    아직 방송국과 언론계로 미투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조만간 터져 나올 것이다. 오랜 기간 여기자로 활동하면서 회식, 2차 술자리, 노래방 등에서 술과 가무를 통해 친목과 화합을 다져온 문화에 익숙해 있다. 피차 성희롱적 발언을 농담 삼아 했고 별로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그 자리에서 한바탕 웃고 마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남자기자들이 “아직 빵빵해” 하면 자기주장 강한 골드 미스나 드센 아줌마 여기자들은 “밤일은 되고?” 하면서 한술 더 떠서 놀려먹었다. 살면서 성(性)으로 인한 무시나 멸시, 성추행 등을 안 겪어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성에게 당한 남성들의 미투도 물론 있을 것이다. 일부 허위나 과장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나오는 여성 피해자들이 저렇게 많은 걸 보면서 한국은 여전히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이 사회 모든 분야에 만연했구나 하는 실망감이 든다. 가해자들이 영혼 없는 예술 활동을 통해 지금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점도 든다. 미투 바람 앞에 어느 구석에선가 “나, 떨고 있니?” 하는 남녀불문 가해자들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길게는 수십 년 넘게 이어졌으며,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지다. 여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에서 사건을 수수방관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백과 폭로의 ‘미투 운동'에 연대와 지지, 나아가 자정작용을 함께 고민하려는 ‘위드 유 운동’이 더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최근 한달간의 뉴스는 마치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화를 방불케했다. 언론 역시 증거와 증인들에 대한 기계적 나열이 아닌 권력형 성범죄가 이어지는 이유를 짚고, 선정적 보도를 자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는 권력을 악용한 성추행이 만연했고, 철저히 은폐되어 왔다. 영화계와 방송계, 연극계 등 문화계 뿐 아니라 법조계, 정계, 학계, 교단은 물론 시민사회 단체와 종교계까지 성추행으로 곪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한국판 미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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