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하기가 싫고 자꾸 딴 짓이 하고 싶다’ 학습클리닉을 방문한 민형군의 첫마디였다. 중학교 3학년인 민형군은 학년이 시작되면서 평소보다 잠이 많아졌으며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자꾸 누워 있고 싶어 힘들었다고 하였다. 반면 자꾸 게임을 하는 싶은 기분이 들어 학원을 빼먹고 PC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부모와의 마찰이 늘어나면서 적대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자 병원을 찾게 되었다.

면담에서 민형군은 공부를 하려고 해도 집중이 되지 않음을 호소하였고 원래 부모의 얘기에 순응하는 편이지만 최근엔 반항하고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며 마음의 갈등을 드러내었다. 또한 어릴 적부터 공부를 매우 잘하는 여동생보다 자신이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으며 가족들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하였다.

어릴 적부터 자기주장을 거의 하지 않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민형군은 학업에 대한 흥미를 가지지 못했으며 평소 성적도 중위권이었다. 그러나 수개월 전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내원 당시 성적은 하위권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2학기가 들면서 미래와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욱 커졌지만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자 정서적으론 더욱 위축되고 주위반응에 대해선 짜증이나 공격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되었고 스스로는 게임을 하면서 도피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심리검사에서 위축감과 우울감 그리고 불안과 공격성 등 해결되지 않은 정서적 문제들이 많이 관찰되었고 임상적인 우울증이 시사되었다. 지능검사(WISC-III)에선 지능지수 116으로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언어성 지능에 비해 동작성 지능이 16점이나 낮아 인지 기능의 효율성이 떨어져 있었다. 자율신경검사(HRV)에선 부교감신경계의 활성도가 70%로 높아져 있어 무기력한 상태에 있음을 지지하였다.

민형군은 청소년우울증으로 진단되었고 항우울제를 투여하고 심리치료를 병행하였다. 그는 자신과 주변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나 심리적 불편감을 느끼고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며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치료 시작 후 2주가 경과되면서 과도한 졸음과 무기력증이 가장 먼저 호전되기 시작하였고 자신과 가족에 대한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 얼마 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중위권 성적을 회복하였으며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좀더 나은 미래와 자신의 모습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학습동기와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정서문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소년 시기에 흔히 나타나는 우울증은 학습과 자기성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적절히 치료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신체적 질병 없이 의욕이 떨어지고 학습동기가 저하되는 경우 한번쯤 우울증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울하다고 할 때 대개는 슬픔을 떠올리게 된다. 흔히 우울증하면 마음이 슬프고 눈물이 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병으로서의 우울증은 슬프다기보다는 ‘삶의 에너지가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서투르며 말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우울감보다는 짜증이나 신경질적 반응, 집중력과 학습능력의 저하,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 게임중독이나 학교거부와 같은 반항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명백한 우울증보다 눈에 띄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는 우울증은 적절한 치료기회를 놓치게 하므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적은 마음의 행복에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청소년 우울증이 의심되는 경우
- 말수가 줄어들고 어두운 표정
- 잠이 많아지거나 무기력한 모습
- 집중력의 저하, 둔하거나 멍한 모습
-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나 지속적인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
- 평소보다 게임에 탐닉하며 하지 못하게 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경우
- 매사에 짜증이 많아지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
- 매사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
- 친구들 혹은 식구들과의 잦은 다툼
- 거짓말, 등교거부, 가출, 반항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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