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도로 건설 중장비업체 비르트겐그룹을 운영하던 위르겐·슈테판 비르트겐 형제는 지난해 회사를 미국 농기계업체에 46억유로(6조400억원)를 받고 팔았다. 비르트겐 형제의 아버지가 창업한 비르트겐그룹은 지난해 매출 30억유로(3조9000억원)를 올린 알짜 기업이다. 그런데도 회사를 매각한 건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두 형제의 자녀는 너무 어렸다. 형제는 “아버지가 만든 회사를 팔아치우는 것은 힘든 결단이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고 했다. 독일 레미콘업체 푸츠마이스터도 비슷한 경우다. 가족 내 경영을 물려받을 적임자가 없어서 회사를 중국 콘크리트업체 산이에 팔았다.‘히든 챔피언’(초우량 중소기업)이 즐비한 강력한 중소기업의 나라 독일의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 불리는 가족 소유의 독일 중소기업들이 경영 승계자를 찾지 못해 외국 자본에 넘어가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독일 미텔슈탄트의 ‘세대 위기’라고 표현했다. 360만 미텔슈탄트 중에서는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상징인 ‘히든 챔피언’도 있지만 대부분은 직원 5인 이하의 소기업들이다. 이들이 독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독일 전체 기업 가운데 99.6%가 미텔슈탄트이고, 이들이 전체 일자리의 70%를 담당한다. 독일 수출의 60~70%를 이들이 올린다. 미텔슈탄트도 경영 승계라는 공통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독일 정책금융기관인 KfW 금융그룹은 미텔슈탄트 경영자 중 84만여 명이 자식이 너무 어리거나 가족 내 적임자를 찾지 못해 향후 5년 안에 경영권 승계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기의 가장 큰 요인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한 출산율이다. 경영 승계를 꺼리는 창업자의 자손도 갈수록 늘고 있다. 대도시에서 공부하며 최신 문화를 누린 자녀들이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불편한 시골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KfW에 따르면 2년 안에 경영권 승계를 원하는 미텔슈탄트 경영자 23만6000여 명 중 후계자를 찾아 승계 협상을 마무리한 기업은 30%에 불과했다. 28%는 후계자를 찾았지만 협상이 진행 중이고, 42%는 아직 후계자조차 찾지 못했거나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약 10만 명의 기업인이 아직 후계자를 찾지 못한 셈이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