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문 대통령 말, 통역할 필요없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중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 말은 전에 들은 말일테니 통역할 필요없다”고 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여러차례 보여 향후 우리 정부의 해명이 주목된다. 한미 취재진과 백악관 등에 따르면, 한미 정상은 이날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각료·참모들의 배석이 없는 단독정상회담 중 12시 10분경부터 12시 35분까지 양국 취재기자들에게 북한 문제를 비롯해 미국내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기자들과 양국 정상의 문답은 양국 정부가 사전에 협의한 단독회담 예정종료 시간을 완전히 넘긴 시간까지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끝난 직후 한 기자가 영어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다고 보는가”라고 묻자 “그는 매우 진지하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예상외로 긴 답변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계획된 회담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정상들이 ‘질문은 나중에 하라’는 취지로 말하거나 아예 답하지 않는다. 이어 또다른 백악관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북 정상회담(the summit)이 (정말) 열리느냐”라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정부 관계자 중 누군가 기자들의 질문을 제지하는 것을 말리는 듯 “잠깐만, 계속하라(One second. Go ahead. Go ahead, John.)”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질문을 끝까지 더 듣고나서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조건을 얻을 수 없다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부터 정상회담이 열린 백악관 오벌오피스는 완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으로 변했다.

한국 통역 안듣고 미국 기자와 문답
문 대통령에게 즉석공개질문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과 문답과정에서 북중 정상의 다롄 회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후, 옆에 있던 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 김정은의 두번째 만남에 대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 말해도 좋다”고 공개적으로 묻기도 했다. 흡사 리얼리티쇼 진행자 같았다. 문 대통령과 한국 기자의 마지막 한국어 문답은 아예 영어 통역을 듣지도 않았다. 12시 40분경, 트럼프 대통령이 ZTE 관련 질문을 더 듣고 이에 대해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취재진과 문답을 마치려고 했다. 이 시점에서 한 기자가 우리 말로 문 대통령에게 ‘미북정상회담 및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을 물었다. 문 대통령이 이에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저의 역할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를 하는 그런 입장이라기보다는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문답은 영어로 통역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에 들은 말일 거 같으니 (문 대통령 말을) 통역으로 들을 필요가 없다(And 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 because I’m sure I’ve heard it before)”고 말한 뒤 웃었고, ‘사실상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외교 참사’라고 지적했다. 영어로 진행된 미국 언론과 트럼프 대통령의 문답 중 일부는 문 대통령과 우리측 기자들에게 충분히 한국어로 통역이 제공되지 않기도 했다. 미국측 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답한 뒤, 한국어로 통역되는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추가 질문을 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62일 만에 모습 드러낸 이명박 전 대통령
MB“오늘 새로운 사실 많이 아네”… 증거 신빙성 문제삼아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50억원대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77) 전 대통령의 재판이 23일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이 시작되기 1시간여 전인 이날 오후 1시쯤 서울동부구치소 호송차를 타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이 전 대통령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3월 22일 구속된 이후 62일 만에 처음이다. 이 전 대통령은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손에는 서류봉투가 들려있었다. 호송차에서 내릴 때에는 수용자 번호가 적인 배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법정에서는 배지를 착용했다. 특이한 점은 수갑이나 포승줄 등으로 신체를 결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 4월 개정된 수용관리 및 계호 규정에 따라 65세 이상이나 여성 등은 구치소장의 판단에 따라 포승 없이 재판에 참석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변호인들은 이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식사를 많이 하지 못하고 당뇨와 불면증에 시달리는 상황이라고 전한 바 있다. 건강 상태를 우려해 불출석 상태로 재판을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재판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정계선 부장판사는 “사건의 성격과 국민의 관심도, 알권리 등을 고려해 촬영 신청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재판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인정신문부터 시작됐다.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이 전 대통령은 “무직”이라고 짧게 답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 설명과 변호인 측의 반박을 거쳐 이 전 대통령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2시 16분부터 11분가량 발언했다. 이 전 대통령은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냥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봉사와 헌신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고 했다. 또, 첫 공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던 도중 방청석을 바라보며 “내가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아네, 나도 모르는…”이라고 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이 믿을만 한 게 못 된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장이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느냐”고 묻자 “네,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발언기회를 얻은 뒤 10여분에 걸쳐 공소사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자신도 아마 속으로 인정할 것이다. 무리한 기소가 됐다”, “공소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했다.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인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지난달 9일 이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다스 비자금 조성·사용에 따른 횡령(349억원)과 탈세(31억원), 다스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신 부담한 68억원(뇌물) 등에 대한 형사책임이 이 전 대통령 몫이라는 것이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다스는) 1985년 제 형님과 처남이 만들었다”면서 “30여년간 회사 성장 과정에서 소유·경영 관련 어떤 다툼도 없던 회사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고 했다. 실소유주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법정에는 이 전 대통령의 세 딸이 찾아 재판을 지켜봤다. 부인 김윤옥 여사와 아들 시형씨는 나오지 않았다. 대표적 친이계 인사인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자리를 잡았다. 재판이 열린 대법정은 150석 규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는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였다. 법원은 지난 16일 방청석 68석에 대해 일반인 응모를 했으나 45명이 신청하는 데 그쳐 별도의 추첨을 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