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시 늑대는 모든 가축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습니다.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주변 마을 사람들의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늑대를 소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때 죽음을 당한 늑대가 약 10만 마리였다고 합니다. 늑대가 사라지자 가축들도 사람들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포식자 늑대가 사라지자 엘크(사슴)가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엘크는 나뭇잎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습니다. 엘크 때문에 강가의 버드나무가 사라졌습니다. 버드나무가 사라지자 강의 흐름이 변했습니다. 새와 물고기가 줄어들었습니다. 엘크는 북쪽 계곡에서 겨울을 보냅니다. 엘크가 늘어나자 북쪽 계곡의 키 큰 사시나무가 사라졌습니다. 늑대가 사라지자 코요테가 늘어났습니다. 코요테가 늘어나자 들쥐와 다람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다람쥐나 들쥐를 먹고사는 맹금류, 오소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옐로스톤의 생태계는 점점 황폐해져갔습니다. 옐로스톤 주변 주민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어리석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늑대가 사라진지 70여년 후인 1995년 캐나다에서 늑대 14마리를 들여왔습니다. 늑대는 엘크를 사냥했습니다. 엘크는 위험한 곳을 피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슴이 떠난 자리에 식물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시나무와 버드나무의 키는 6년 만에 5배로 성장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는 더 풍성해 졌습니다. 비버가 돌아왔습니다. 비버는 강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난 강둑은 수달, 오리, 어류들의 서식지가 되었습니다.

    늑대가 코요테를 사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토끼와 들쥐가 늘어났습니다. 이는 여우, 족제비, 오소리, 독수리들을 불러왔습니다.늑대는 강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강의 굽이가 줄어들었습니다. 침식도 줄어들었습니다. 급류지역이 늘어났습니다. 웅덩이가 많아졌습니다. 매우 훌륭한 야생 서식지 환경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늑대가 다양한 동물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늑대가 동물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을 모릅니다. 자연은 대체적으로 좋은 결정을 내립니다. 인간이 70여 년 동안 노력해도 해내지 못한 생태계의 안정이 14마리의 늑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이런 넓은 지역의 땅과 물리적인 지역 특성까지 바꾸었습니다. 저의 딸이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같은 나이의 남학생을 사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자녀 결혼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분의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대학생 때 사귀지 못하면 결혼이 늦어지거나 혼자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부부는 딸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딸은 2009년에 사귀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딸과 아들 낳고 사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간섭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십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십대 자녀와 함께 어려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혜를 갖고 침착하게 대처한다면 무난하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십대 자녀를 위한 5가지 지혜'의 저자 ‘리처드 탬플러’의 의견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라는 것입니다. 십대의 자녀가 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협하는 법, 팀으로 일하는 법, 협상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집안의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어른처럼 대우를 받고 어른처럼 책임감도 느끼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의 방을 뒤지지 마라는 것입니다. 십대들은 부모가 알고 싶지 않은 나쁜 짓을 합니다.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입니다. 그렇다 해도 자녀의 방을 훔쳐보지 마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함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경우에 자녀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면 도우리라고 생각하지만 자녀가 부모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부모가 실망감을 나타내고 고함을 질렀다면 부모에게 찾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넷째는 모든 것에는 조건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리와 책임은 늘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자녀의 선택을 비난하면 자녀를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십대는 상처받기 쉬운 때입니다. 십대의 자녀들은 부모에게 반기를 들고 충격을 주고 싶어 합니다. 동시에 부모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이러한 모습에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녀들은 동물과 다릅니다. 자연처럼 내버려두어도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간섭하고 인위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비밀 병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 상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하소연도 다 들어주시고 믿을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특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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