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아이도 죄책감 등 평생 악 영향

   
    부모의 편애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터넷 익명게시판의 단골 주제다. 자식들 중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대답으로 곧잘 인용되지만,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편애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과 닮은 외모나 기질 때문에 특정 아이를 편애할 수도 있고, 가장 먼저 낳은 아이나 막내를 편애할 수도 있다. 성별 혹은 아이의 능력이나 성취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한 아이가 더 문제적이고 병약해 더 많은 주의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편애할 수도 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숨기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한 아이에게로만 쏠리는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 특히 가정 내 자산이나 자원이 충분치 않을 때 편애가 발생하기 더 쉽다.

▲ 모성애의 추한 비밀‘ 편애’
    2013년 2월 캐나다 <아동발달저널>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가 한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보이는 것은 공격성, 관심 갈구, 정서적 문제 등 아동의 정신건강에 여러 문제를 초래한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는 낮은 자존감은 물론이거니와 평생토록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 애정을 갈구하게 된다. 형제간의 우애가 좋을리 만무하다. 어른이 돼도 형제는 엄마와의 관계를 놓고 서로를 비교하고, 이는 성인 자녀들간의 우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알렉스 젠킨슨 교수팀이 10대 형제 자매가 있는 282가족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부모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약물이나 알코올, 담배 등에 중독될 확률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 다. 약간 차별받은 아이들은 그 확률이 2배 이상이었고, 매우 차별받은 아이들은 4배 이상 중독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실제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었느냐가 아니라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지하느냐 여부, 부모가 실제 편애하지 않았더라도 아이가 차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 사랑받는 아이도 망친다
    차별받는 아이의 내면에선 부모의 관심과 호의와 사랑과 돈을 독차지하는 형제는 행복할 것이라는 시기심이 솟구치지만, 편애는 가장 사랑받은 아이뿐 아니라 간과된 아이, 사랑받지 못한 아이 모두에게 일평생 악영향을 끼친다. 편애의 대상이 된 아이는 일시적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만 전반적인 가정 환경이 적대적이며, 특히 형제 자매간에 공격적인 관계 속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젠킨스 교수의 연구 결과다. 부모로부터 배타적이고도 각별한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점이 있다. 가장 큰 자산이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이다. 아이는 편애를 통 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하는 자신감과 권능감을 갖게 된다.

    편애는 결국 사랑받는 아이에게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사랑을 독차지한 아이는 부모만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친밀한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편애받았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형제와 부정적인 관계를 겪는다. 부모가 나이들면 더 많 은 돌봄과 조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게 되고 이는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 불공평하게 공평하라”
    편애의 해악을 절감했다면 마음 속의 저울추를 감추고 어떻게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할 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부모들은 “오빠와 나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라는 질문에 “똑같이 좋지”라는 모두에게 실망스런 대답을 내놓는다. 자식들 사이의 본능적 경쟁관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육아서의 고전‘ 천사같은 우리 애들 왜 이렇게 싸울까?” (원 제 ‘Siblings Without Rivalry’ 아델 페이버, 일레인 마즐리시 지음)는 불공평하게 공평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평가해서 그것들 각각을 편애하라. 어느 아이나 자기가 제일 사랑 받는 아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엄마는 오빠와 너를 똑같이 사랑해”라고 말하기보다는 “이 넓은 세상에 너는 딱 한 명밖에 없잖아. 너처럼 생각하고, 너처럼 느끼고, 너처럼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엄마는 네가 내 딸인 게 너무 좋아”라 고 말해 아이들 각자가 부모에게 특별한 존재로서 사랑 받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배에 타고 있다가 한꺼번에 다 물에 빠지면 아빠는 누구를 구해줄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제일 어린 사람”“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 식으로 대답하지 말고 “그거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구나. 아빠한테는 너희 모두 다 특별하거든. 한 명 한 명이 다 다르니까”라고 대답하는 게 현명하다. 아이들을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는 건 누구나 아는 육아 상식이 됐다. 하지만 칭찬할 때 하는 비교는 괜찮다 고 생각한다.

    “넌 참 숙제를 빨리 마쳤구나. 오빠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데” 같은 말은 오빠 안 듣는 데서라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칭찬은 한 아이에게 다른 형제를 무시하게 만드는 특권을 줄 수 있다. ‘아빠는 오빠를 별로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여기게 될 뿐 아니라 자기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다음 번에 잘하지 못하면 남몰래 비난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 아이들과 대화는 일대일로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언제나 일대일의 관계로만 하는 게 좋다.“ 동생은 한 번에 다 치는 곡을 저는 한 달이나 연습해야 했어요. 저는 피아노 에 재능이 없나 봐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대신 넌 운동을 잘하잖니” 같은 칭찬은 답이 아니다.“ 동생과는 상관 없어. 네가 피아노를 칠 때 느끼는 너의 즐거움이 중요한 거야”라고 말해 일대 일의 단독관계를 형성하는 편이 낫다.“ 넌 착하잖니”“ 넌 대신 다른 걸 잘하잖니”처럼 아이를 고정된 역할의 틀 안에 집어넣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한 아이를 더 사랑하는 마음은 잘못도 아니고 교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모는“ 마음에 쏙드는 한 자식에게 쏠리는 자신의 열정으로 부터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완전하고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의 책무다. 저자들의 말처럼“ 똑같이 사랑받는 건 뭔가 사랑을 덜 받는 것 이지만, 특별한 존재로서 각기 다르 게 사랑받는 것은 필요한 만큼 사랑받는 것”이다. 아이들 각자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채워주는 것이 공평한 사랑이며, 단지 공평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는 것을 줄 필요는 없다. 부모로부터 감탄의 눈길을 받아본 적 없는 유년기는 얼마나 서럽고 아픈가. 자식들간 우애는 부모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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