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청소년 문화축제를 마쳤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참가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어쩐일인지 행사를 잘 마치고도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 일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보다도, 상을 받지 못한 참가자들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려서였다.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무대와 관객들의 응원은 이 곳 콜로라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여기에다 이미 탄탄한 실력을 검증받은 전 대회 수장자들이 펼친 축하공연은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상 시상을 앞두고 시상대에 오른 필자는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본선 무대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심사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 행사를 통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꼭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꿈을 찾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자세를 배우길 바란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을 참가자들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며 떨쳐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그들이 무대에 서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의 깊이를 알기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다음날 뜻하지 않게 참가자들로부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다는 감사편지와 아이들에게 꿈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는 주간 포커스에 감사하다는 진심어린 부모님들의 인사를 받고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지난 대회까지 다소 노래에 치우쳐 있었던 청소년 문화축제의 무대가 올해는 매우 다채로웠다. 바이올린, 피아노, 노래, 댄스 등참가 장르가 다양했고 특히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춘 클래식 악기 연주자들의 등장으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 악기인 가야금까지 더해져 축제의 폭이 확실히 넓어졌다. 이에 더해 참가자들의 수준도 높았다. 예선 때 보지 못했던 실력들이 뿜어져 나오면서 공연장을 달구기에 충분했다.

    또,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축하공연을 펼쳐준 쥬빌리 앙상블의 리틀 한국무용팀은 '난감해'라는 곡으로 퓨전 무용을 선보여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6회 대상 수상자인 민동비 양은 훨씬 성숙된 모습으로 관객은 물론 참가자들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또, 드럼 연주로 6회 때 동상을 받은 서유나 양은 행사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음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알 수 없이 밀려오는 뭉클함, 그리고 감동은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그래서 음악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년 퍼포먼스를 개최한다고 해서 참석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이혼한 엄마와 아빠가 참석해서 자신들의 자녀가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음악을 통해서 가족이라는 끈을 다시한번 이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듯했다.

    필자가 지난 8년동안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해온 이유는 이런 음악경연을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무대 위를 장악하는 자신감을, 그리고 한국사람이라는 동질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무대위에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멋져보인다.

    벌써 일곱번째 행사를 치뤘다. 주말 비즈니스까지 포기하면서 행사 기획에 힘써 준 스카이 뮤직 스테이션의 이재훈 원장과 박용환 선생, 이번 행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준 심사위원들과 사회자에게도 감사하다. 이들 덕분에 청소년 문화축제는 더욱 더 빛이 날 수 있었다. 후원업체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사실 아이들에게 줄 상금을 마련하는 일은 공연장 섭외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많은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친히 후원금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자기 주머니에서 1백 달러도 나오기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청소년 문화축제’라는 말만 듣고 두말않고 후원을 해주셨다. 형식적으로 이름만 한 줄 쓰여지는 후원자가 아니라, 매년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이번 참가자들은 실력이 뛰어나 심사과정이 무척 힘들었다. 자칫 수상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불만을 터트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면서 겸손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깍듯이 인사하고, 공연을 마치고 난 뒤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는 예절 바른 아이들을 보면서, 이 청소년 축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또다른 배움을 주고 있음을 확신했다.

    참가자들의 놀라운 실력과 훌륭한 무대 매너 뒤에는 부모의 역할이 숨어 있다. 이번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의 부모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필자의 두 아들은 피아노를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별 관심이 없다. 이는 우리 아이들의 재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학원을 자주 빼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깥일 하랴, 집안일 하랴, 이러저리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레슨을 자주 빠뜨렸다. 아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일정이 먼저였던 탓이다. 그런데 이날 참가한 학생들의 부모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생활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이렇게 빛나는 무대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콜로라도의 한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행사에서 참가팀, 후원자, 관객 모두는 충분히 그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의 반응을 보면서 뭔가가 빠진 듯하다. 초대장을 받지 못해서 참석을 안 했다는 진부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입장료가 없기 때문에 초대장은 애초부터 없었다. 애들 노는데 어른들이 왜 끼냐는 생각도 틀렸다. 참가 대상을 한국어로 ‘청소년’이란 단어를 선택했지만, 영어로는 ‘Youth’고, 24세 이하의 초등학생, 중고생, 대학생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러니까 이는 단순히 어린 아이들만의 행사가 아닌 것이다. 이제는 내 아이만이 아니라 범동포적 차원에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가 아닐까 싶다. 와서 박수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한인사회의 어른들이 너희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한인 2세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서 참가팀, 이 청소년 문화축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중요한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온 동포가 관심을 갖고 함께 즐기는 동포사회의 큰 잔치라는 것을 잊지않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15명의 친구들에게 격려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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