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마무리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지방선거 개표결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광역자치단체 17곳 중 14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대구ㆍ경북만 차지했을 뿐, 보수 야당의 텃밭으로 인식돼온 부산 경남·울산·경기까지 모두 내주고 말았다. 한국당은 그야말로 TK당으로 쪼그라든 모양새다. 서울시 구청장 25석 중에서도 서초구 한 곳을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를 했다. 부유층이 밀집된 강남, 송파구에서도 민주당이 이겼다. 1위 여당 후보와의 표차가 두 배가 넘는 곳이 수두룩할 정도로 한국당은 유권자로부터 사실상 왕따를 당했다.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 후보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또, 미니 총선급으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여당이 12곳 중 11곳을 석권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한국당과의 의석 차를 현재의 7석에서 17석으로 벌리며 범여권(민주평화+정의+민중당+친여 무소속)이 154석으로 원내 반수를 넘기게 된 것이다. 선거사상 유례없는 승리고, 패배다. 안그래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켜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더 큰 힘이 실리게 됐다.

    일찍이 이런 선거는 없었다. 보수의 몰락이자 괴멸이다. 가히 충격적인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진보의 승리라기보다는 보수의 참패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한국당의 참패는 자업자득이다. 한국당은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 이후 줄곧 집안싸움이나 벌이면서 국민에게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책적 대안도 없이 여당의 잘못을 손가락질하기만 바빴다. 당내에 신진인사를 수혈하기는커녕 시·도지사 후보조차 흘러간 인물들을 줄줄이 기용했으며, 특히 당의 수장인 홍준표 대표의 언행은 리스크 그 자체였다. 그의 막말과 돌출 행동은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원성을 낳았다. 한국당 후보들이 홍준표 대표의 지원유세를 기피할 정도로 그는 ‘꼴보수’로 일관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민의의 처절한 심판을 받았음에도 다시 태어나지 못했다. 지금 국민의 눈에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의 무능과 무책임, 무사안일에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선거결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두 보수 야당은 '문재인 정권 실정심판'을 내걸었으나 국민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곧바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한국당의 김문수 후보에게도 뒤진 안철수 전 의원은 정치 생명까지 염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또, 한국당은 이재명 전 성남시장을 상대로 여배우 스캔들과 형수와의 막말 녹음테이프까지 들고 나왔지만 그는 경기도지사에 거뜬히 당선되었으며, 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 농성까지 벌이면서 철조한 조사를 요구했던 드루킹 사건에 연루되었던 김경수 의원도 경남도지사에 가볍게 당선되었다. 한국당의 이러한 외침이 국민의 표심에 미치지 못한 것만 봐도 보수 야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제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야당 기능마저 수행하기 어려워보인다. 바른미래당도 마찬가지다. 공천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잡음이 나오고 결국 성적도 못내는 바람에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일반적으로 선거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경기다. 최근 경기가 꺾이는 경고음이 요란함에도 야당이 이렇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은 야권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봐야 한다. 심각한 것은 매력 부재다. 지난 탄핵 정국 이후로 보수는 분열만 했을 뿐 쇄신은 없었다. 인물, 대안 능력, 대중성 등 수권 세력이 갖춰야 할 모든 요건에서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이때문에 여당이 마음에 안 들어도 도저히 야당을 찍을 수 없는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보수의 새로운 변화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합당하는 식의 양적인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 개혁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시대정신까지 따라가는 질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수 텃밭인 영남권에서도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여당의 무덤’으로 불리던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대의 승전고를 울린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번 승리는 정부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야당의 무능과 구태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보수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분열됐고, 때맞춰 북미 정상회담의 ‘안보 훈풍’까지 불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소용돌이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1년밖에 안 된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선 안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입법·행정·사법·지방 등의 모든 권력이 한쪽으로 쏠렸다. 2020년 총선까지 거의 2년 동안 국민으로부터 심판받을 일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정권의 오만과 독주가 일어날 수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자기들 생각이 정의라고 생각하며 나라를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때문에 민주당은 선거 결과에 절대 자만해선 안 된다. 아직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높지만 추락은 한순간이다. 일방독주로 나가면 승리의 축배가 자칫 독배로 변할 수도 있다. 높은 지지율만 믿고 오만했던 정권은 예외 없이 ‘집권 2년 징크스’에 직면했던 정치사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그런 독선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하고 자제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과 협치에 나서야 한다.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초심이 아니었던가. 이번 선거결과는 여야 모두 민심의 회초리로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선거의 참뜻이다.

    결국 인물도, 비전도, 당내 소통도 없는 3무(無) 보수는 응징되었다. 한국당을 포함한 야당들은 이번 선거가 ‘범보수 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한국당은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이후 국민에게 반성하고 쇄신을 다짐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정치쇼에 불과해 보인다. 한국당의 각종 발언이나 정치 노선은 극우세력만 겨냥해온 행태였기 때문에, 건전하고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한국당을 찍을 수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에 지방선거 사상 최초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의 지인 중 한명은 평생을 한국당을 지지했지만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계산하고 툭하면 ‘위장평화쇼’라고 하면서 평화라는 시대정신을 무조건 외면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도저히 찍을 수 없어 이번에 처음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는 홍준표가 1년 넘게 당에 들어와서 휘젓고 다녀도 누구 하나 제지 못했다며 한국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당은 뼈를 깎는 자성과 반성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다고 보수에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보수정당에 매서운 죽비를 내리친 것은 보수의 절멸을 요구한 게 아니라, 그동안의 적폐를 깨고 나와 현 정부의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정치세력으로 기능해달라는 요구였다. 그 어떤 권력이든 견제세력이 필요하다. 지방권력까지 거의 싹쓸이한 문재인정부는 향후 국정운영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쥘 가능성이 높다. 정치는 진보와 보수, 좌우의 양쪽 날개로 날아야 건강하다. 여당에 치우친 정치 지형은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은 건전한 비판 세력으로 속히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농단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구태 정치인만 득실대는 상황에서 아무리 개혁을 외쳐봐야 국민에겐 쇠귀에 경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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