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서 가야 할 단순하고 소박한 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숫타니파타>라는 경전에‘천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사람을 죽이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가진 재산이 넉넉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상대가 이익되는 일을 물었을 때 불리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 그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 예로써 보답하지 않는 사람, 성자(거룩한 사람)인양 하는데 성자답지 못한 사람, 그는 전 우주의 도둑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다.”

    요즘 와서 더 깊이 느끼는 바, 누구로부터 받는 일보다 누구에겐가 주는 일이 훨씬 더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주는 일보다 받은 일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 분명할진대,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천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주지 않고 받기만 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빚이 되고 짐도 되고 맙니다. 세상살이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닙니다.  세상은 뭔가 부족해서 빈곤한 것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입니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지요. 말 한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도 주고받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게 전달됩니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덕이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고(故) 박목월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천리 길/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달 밝은 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땅만 보고 사는 인생 말고 자주 고개 들어 하늘보고 사는 인생이 되십시오. 구름이 달을 스쳐가는 것인지, 달이 구름을 스쳐가는 것인지, 얼마나 빠르게 스쳐 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인생을 사는 우리는 잠시 후 자신의 일몰(日沒) 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이미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것이 ‘이럴줄 알았으면 더 베풀고 살 걸’ 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가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뒷모습에 있습니다. 앞보다도 뒤가 아름다워야 진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나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습니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납니다. 이웃이 곧 나의 진정한 거울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더 알겠더군요.‘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행20:35)는 주님의 말씀을...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하는 탐욕과 인색의 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떠날 때 깃털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겠지요?

     여름 열기가 벌써부터 코끝에 후끈후끈 다가옵니다. 조국은 몇 주 전부터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입니다. 온난화로 지구 구석구석에서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 중입니다. 사하라 사막이나 고비사막이 일 년에 4Km씩 넓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조국의 황사문제도 다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것이지요. 경제대국들의 과도한 산업화로 인해 지구 환경은 스스로를 조절하며 균형을 유지해 오던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태계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고 수탈입니다. 화석연료는 사람이 만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 번 쓰면 그것으로 끝나는 재생 불가능한 지구 자원입니다. 지금 이 문명은 지속이 보장되지 않는 이 석유에 기반을 둔 아주 허약하고 위태로운 문명입니다.

    지구에 계속 구멍을 뚫어 끝없이 퍼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그것을 태워 지구의 체온을 높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덫에 걸려있습니다. 우리가 지구를 보살필 때 지구도 우리를 보살필 것입니다.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을 취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진수가 태어납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삶은 모든 가지는 삶보다 제한적이겠지만, 그만큼 진실되고 아름다워 집니다. 우리에게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은 가난한 마음을 칭찬합니다. ‘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주는 힘이 있습니다. 진짜 가진 자는 주는 자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정글을 헤쳐 나가는 과정입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의 처신에 의해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진짜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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