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한인사회는 타주에 비해 한인 인구가 적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별일 아닌 일에도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곳이다. 이런 한인사회에서 지난 20여년동안 관심 없는 듯하면서도 실제로 가장 관심도가 높았던 단체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직속 자문기구라는 타이틀이 한 몫을 했을 것이고, 자가 신청을 하지만 최종 위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탈락되는 사람들이 있어 합격과 불합격의 결과를 기다리는 야릇한 긴장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또, 2년마다 열리는 출범식은 한국의 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내노라하는 유명 호텔에서 거창하게 열렸고, 그 규모만 보더라도 동네의 지역 단체들의 평범한 출범식과는 차이가 컸다. 뿐만  총영사관이 개입해 온 한인사회의 유일한 단체여서 공관 인사들이 콜로라도를 방문할 때마다 민주평통의 자문위원들을 만나는 일정은 거의 매번 잡혔다. 이 때문인지 민주평통 자문위원직에는 가장 많은 전현직 한인회장들이 거쳐갔으며, 특히 폼생폼사를 즐기는 지역 인사들의 지원도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물론 젊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협회의 자체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콜로라도의 경우에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덴버의 경우는 자문위원 신청서를 접수할 때가 되면 두 한인회가 서로의 인맥들을 유치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곤 했다. 공관이나 사무처는 형평성을 내세워 두 한인회의 인사들을 적절히 배치했지만 늘 대립해온 두 한인회의 인사들이 소속되어 갈등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성실히 봉사하려던 신선한 인사들은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이들의 기싸움에 질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로 인해 평통 덴버협의회는 출범식은 가졌지만 내분으로 인해 겨우 소수만 동참하는 행사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한국의 민주평통 사무처는 해외협의회 위원 중 124명을 공식적으로 제적 통고했다. 이 중 한 명은 사망했고 69명은 스스로 사직을 했으며, 54명이 위촉 해제되었다. 사무처에서 공식적으로 해촉(解囑) 제도를 적용시킨 건 평통 설립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해촉 즉 그 기수에서 제명된다는 의미다.

    대상은 위촉장 미수령 위원, 참여나 활동 실적이 전무한 위원, 연락이 두절된 위원, 활동 의사가 없는 위원 등인데 협의회장의 권한으로 명단이 작성되어 사무처로 보내졌다. 해촉 대상위원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시기가 4월 경인 것을 미루어보면 그 이전부터 불량 위원에 대한 색출 작업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덴버협의회의 경우 사직서를 제출한 위원은 별도로 처리되었고, 총 5명의 위원이 아웃되었다. 공식적인 명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일찌감치 사직서를 제출한 이들은 더 있다. 지난해 7월 덴버협의회는 31명의 위원이 위촉되었다. 하지만 두 명이 공식발표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 18기는 총 29명의 위원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유타와 와이오밍 위원을 포함한 숫자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치러진 출범식 이후에도 추가로 사직서를 제출한 이들이 속출했고, 와이오밍 지역의 위원을 제외하면 콜로라도 거주 위원의 수는 턱없이 줄어들어 15여명 정도 밖에 안되는 상황이다. 이 중에서도 적극 동참하는 위원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덴버협의회가 생긴 이후 초유의 자문위원 부족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번 덴버협의 사임 및 해촉된 위원들 대부분은 협의회장과의 불화 그리고 인간관계의 파벌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주에는 20개의 협의회가 있다. 이중 덴버협의회는 가장 적은 인원으로 꾸려가고 있는 곳이다. 로스앤젤레스 186명, 뉴욕 186명, 시카고 154명, 워싱턴 135명, 샌디에고 118명, 시애틀 114명 등 대도시와는 규모가 비교가 안된다. 또, 보스턴(43), 휴스턴(50), 달라스(59), 하와이(56)보다도 작은, 미주 지역에서 가장 소규모 협의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해촉된 총 인원 54명 중에 5명이나 덴버에서 나왔고, 사직한 인사들까지 포함시킨다면 미주지역의 해촉 및 사임 인사의 10% 이상이 덴버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민족의 염원인 조국의 민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관련 의견을 수렴 건의하고 국민의 통일 의지와 역량을 결집, 모든 미움과 갈등, 분열을 해소하며 국민의 화합과 단결에 이바지하는 등 통일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초당적 범국민적 통일기구이다. 즉 대한민국 국민의 내적 분열을 통합해서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제일 작은 협의회인 덴버에서조차 이런 자문회의의 의미가 전혀 실천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통일을 위해 조직된 기구에서 모범적인 통합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오히려 지역 사회의 분열이 불거진다면 협의회 그 존재의 가치는 가벼워질 수 밖에 없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 만들어진 민주평통은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독재 정치의 방패막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문위원 구성에 변화를 주는 것을 시작으로 새 정부 성격에 맞는 기관으로의 탈바꿈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해외지역 구석구석까지 변화의 바람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알다시피 민주평통은 헌법기관이며 수석 부의장, 사무처장을 포함해 현재 알려진 대로 국내와 해외에 총 2만여 명의 위원이 있으며, 이 기구의 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의 위임장을 받는 자리라면, 월급이 있든 없든 사실상 공무원의 자격이다. 과거를 보면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그 외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교포들이 이 자리를 관직으로 생각하며 명함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빽'을 쓰는 인사도 있었다.

    민주평통의 한계는 바로 전문성이다. 어느 분야든 자문 역할을 하겠다면, 자문할 과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빼고는 지식산업과는 거리가 먼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남북관계에 대한 정보나 조사면에서 본국에서 보다 크게 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주평통은 그간 정기적으로 전체 평통 회의나 각 지역 모임, 또는 다른 방식으로 그런 자문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 역대 정부도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대북정책을 개선한 적도 없어보인다. 최근 논란이 된 해촉제의 도입이 올해 초 결정되었다면 작년 출범식 직후 내부 분열은 시작되었다고 짐작된다. 덴버협의회의 자문위원이 타주와 비교해 많지도 않은데, 사직과 해촉된 인사들이 10여명에 이른다는 것은 협의회장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제대로 활동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났고, 내년 상반기에 다음 기수의 위원을 뽑기 위해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질 것이 자명하다.

    2년간의 18기 임기가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웬만하면 개개인과 접촉해 잘 다독여 나갈 수도 있는데, 굳이 해당 위원들도 모르는 상태에서 명단을 한국의 사무처에 보내 결국 해촉까지 시키는 사태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라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반대로 자문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자기 추천방식으로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인데, 고의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불이행한 것으로써 이에 대한 지탄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진정으로 봉사를 원했던 사람들이 발탁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들로 인해 협의회에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면 이또한 대한민국 헌법기관에 대한 무례이다. 어찌되었던 해촉 대상을 선별하고, 이를 통보받는 과정이 즐거울리 없다. 민주평통 덴버협의회가 지회에서 협의회로 승격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힘들게 얻은 협의회 체제를 잘 꾸려나가야 하는데,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번 회기 임기도 절반이 지났다. 콜로라도 한인사회 내에서도 통일을 이룰 수 없는데, 어찌 대한민국 국민의 전체 염원을 담아 국가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는가. 해촉제는 협의회의 활발한 활동을 위한 조치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한인사회의 분열을 촉발하는 제도가 될 수도 있다. 남북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한과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러한 때일수록 역할을 찾아야 할 민주평통이 내부분열 수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름만 있는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서의 역할과 품위를 유지하길 당부한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