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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사랑입니다!”
2018년 07월 26일 (목) 06:53:36 weeklyfocus weeklyfocus@focuscolorado.net

    우리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삶의 현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 인내가 필요합니까? 세상살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내 힘과 능력으로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내 능력 밖의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는 한 없이 기다려야 하고, 참아 견뎌내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인내야 말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약 야고보서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야고보서5:7) 식물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고 귀한 열매를 맺히도록 하는 것은 농부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단지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뿐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인격이 귀한 열매로 익어가고 여물어가게 하시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는 훈련을 하십니다. 철저하게 참고 기다리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내가 사랑일까요? 이것은 제 자신의 주장이 아니고, 사도바울 선생님께서 내리신 사랑에 대한 정의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전서13:4-7절에서 사랑을 열다섯 가지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 장’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바울 선생님은 세 번이나 인내와 관련된 단어와 구절을 동원하여 사랑을 정의합니다. 사랑을 정의하는 첫 번째 구절이 이렇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13:4) 사랑에 대한 첫 번째 정의가 ‘오래 참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정의하는 마지막 구절이 이렇습니다.“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13:7). 사랑에 대한 열두 번째 정의가 참는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 열다섯 번째 정의가 사랑은 견디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인내 아닙니까? 그래서 인내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역시 인내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를 향해 무던히도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가슴에 가무쳤던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가 쓴 애가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3:22-23).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자신이 진멸되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궁하시도록 베푸시는 인자와 긍휼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23절에 등장하는‘성실’이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견뎌내고 참아내고 이겨낸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도 그의 백성들을 향한 ‘인자’(헤세드), 곧 ‘언약적 사랑’을 이행하시기 위해 ‘오래 참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실하심’ 곧 ‘하나님의 에무나’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인내’는 사람의 성품이라기보다는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향해 끊임없이‘에무나’ 하시는 이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오늘도 우리는 ‘인내’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이‘에무나’라는 단어를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2:4) 여기‘믿음으로 산다’고 할 때 ‘믿음’이라는 단어가 똑같은 ‘에무나’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에무나’, 곧 ‘참아내고 견뎌 낸다’ 다시 말하면 ‘인내하며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사랑하기에 오래 참으시는 사랑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내할 줄 모르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고단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참고, 귀한 열매를 바라는 농부처럼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노사연이 부른 ‘바램’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 다리도 아픕니다. /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 ‘사랑 한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 그대뿐입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아무리 인생살이가 지치고 힘들어도,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으로 인하여 인내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인생은 그냥 늙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인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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