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배자 케이스가 풀렸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미조리주에 사는 변호사인 게리 헤그스는 운전면허증을 도둑맞은 후 수십차례나 체포되는 등 곤욕을 겪었다. 도둑은 헤그스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하며 감옥을 들락거렸다.

이 도둑은 칼 아더 드로시어로 판명됐다. 드로시어는 수십년동안 일리노이주 보버네스의 버밍햄 강철공장에서 수퍼바이저로 일을 하며, 3명의 딸을 키웠다. 드로시어는 7년 전에 사망했다고 딸인 크리스틴 드로시어(25)가 밝혔다.

이 딸은 헤그스에게 전화를 해,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이 그 수배자라고 밝혔다고 알려줬다. 플로리다에 사는 크리스틴 드로시어는 아버지가 헤그스의 신분을 도용해 범죄를 저질러 수배자가 된 것은 확실하며, 헤그스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콜로라도 교화국의 대변인 케더린 산귀네티는 드로시어가 사망직전에 알콜 관련 케이스로 체포되었을때 찍은 지문과 37년 전에 콜로라도 감옥에 들어갔을때 찍은 지문이 반드시 일치해야지만 해결 케이스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드로시어가 문제의 범인인것은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헤그스의 신분도용 악몽은 지난 1971년에 사진이 없는 운전면허증이 담긴 지갑을 시카고에서 도난당하면서 시작됐다. 도둑은 같은 해 덴버로 와서 크리스마스날 1560 다우닝 스트리트에 있는 한 아파트를 털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도둑은 도지어 슬레이 주니어, 에드워드 드로시어(칼 드로시어의 아버지 이름), 아더 드로시어(칼 드로시어가 사용하던 이름) 등 여러 가지 가명을 댔고, 덴버 경찰은 도둑이 소지하고 있던 운전면허증(실질적으로는 헤그스의 운전면허증)의 이름이 도둑의 실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꾀죄죄한 머리의 도둑은 헤그스란 이름으로 10년형이 선고되었고, 부에나 비스타의 교도소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그는 맹장 수술을 받아 아랫배에 작은 흉터가 남겨졌으며, 1973년 2월 25일에 탈옥에 성공했다. 1976년에 드로시어는 일리노이주에서 결혼했으며, 같은해 운전면허증의 원주인인 헤그스는 우연히도 일리노이에서 대학을 다니다 일리노이 주 순찰에 처음으로 체포됐다.

콜로라도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 헤그스는 콜로라도 당국이 찾는 흉악한 탈옥수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바지를 벗어 배에 흉터가 없음을 보여줘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34년간 헤그스는 공항, 고속도로 등지에서 수없이 체포되었으며, 권총을 겨눈채 집안으로 뛰어든 경찰에 의해 수차례 집안을 수색당해야 했다.

그러나 드로시어는 일리노이에서 평생을 조신하게 강철공장에서 일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 딸 셋을 키우고 소프트볼 토너먼트에 참가하고 엘비스 흉내를 내는 등 평온하게 살다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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