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김병오 할아버지는 70여 년 만에 여동생을 만났다. 김 할아버지는 무려 5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단발머리의 여동생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여동생을 만난 할아버지는 헤어지기 전날 "내일 울지 말자"라고 동생과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상봉 마지막 날 두 손을 꼭 잡은 백발의 남매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동생은 차마 손을 놓지 못하는 오빠에게 '바라보는 여생 길에 행복 넘친 우리 세상…' 이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동생의 노래를 뒤로하고 백발의 오빠는 남측으로 오는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오빠는 쉴새 없이 손을 흔드는 동생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북측의 아들을 만나면 "너도 술 좋아하냐"고 묻겠다고 했던 이기순(91) 옹은 남측에서 가져온 소주를 물컵에 따라 아들 리강선(75)씨와 나눠 마셨다. 부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마신 술이었다. “내 아들이야, 이제 마음이 놓여. 내가 내 아들을 이제야 만났어!” 이기순씨는 곁에 있는 취재진들에게 연일 아들 자랑이었다. 헤어진 채로 야속하게 흘러버린 세월, 아버지와 아들은 그날 만큼은 시간을 붙들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황우석(89) 어르신은 이별 10분 전, 곧 헤어질 딸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금강산에 머무는 동안, 밥 한끼 제대로 드시지 못한 황우석 어르신. 차량에 탑승하기 전, 딸을 있는 힘껏 안아보고 등을 토닥였다. “딸아,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지. 나만큼만 오래 살아라”라며 계속 눈물을 흘리는 딸에게 그만 울라고 말했다.
문현숙(91) 할머니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간 반지와 시계를 꺼내 북측의 두 여동생에게 채워줬다. 한신자(99) 할머니의 북측 딸 김경실(72)씨와 경영(71)씨는 버스 창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 할머니도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 잘 있어라"고 말했다.

    예순여덟 살이 돼서야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본 조정기(67) 씨는 아버지 조덕용(88) 어르신을 태운 북측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속도에 맞춰 계속 따라가며 울음 섞인 인사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버스 창문을 열고 정기 씨를 바라보고 엉엉 울며 대성통곡했고,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 손을 잡고 "오래 사셔야 돼, 그래야 한 번 더 만나지. 그러니까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렇게 아들은 68년 만에 아버지를 처음 보고 마지막이 되었다. 버스에 오른 뒤에도 남북 가족들은 버스 차창에 붙어 손을 흔들고 창문을 두드렸다. 마지막까지 온기를 느끼기 위해 차창을 사이에 두고 두 손을 마주해 본다.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보게 되는 가슴 저미는 장면이다. 3년을 기약하고 고향을 떠났지만 70년 만에 가족을 만났다. 그 오랜 세월 생이별했다가 짧은 시간 만난 가족들은 다시 헤어져 서로 깜깜무소식이 된다. "죽지 말고 다시 만나자"는 부질없는 약속도 못한다. "우리 이제 언제 다시 만날까요, 여태까지 살아줘서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고마워요"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눈물바다의 끝은 없었다. 작별의 아쉬움은 통곡으로 달랬다.

    지난주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는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품은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났다. 1차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동반가족 등 197명이 북측 가족을 찾았고, 2차 상봉에서는 북측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81명과 326명의 동반가족들이 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분단 이후 21번째, 지난 2015년 이후 2년 10개월 만의 상봉이다. 상봉장에서는 70년 가까이 가슴 속에 억눌렀던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사흘 간 총 6차례에 걸쳐 12시간을 만났다. 남북 분단으로 잃어버린 지난 70여년의 세월을 12시간 안에 눌러담기는 부족했다. 더 안타까운 일은 만남 이후에도 재회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죽기 전에 그래도 한번은 만났다는 위로로 여생을 사는 수밖에 없다.

    이번 이산가족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개최가 확정됐다. 당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를 나란히 강조했다. 이산가족 문제야말로 속도전이 필요하다. 어쩌다 한 번씩 100명 정도가 잠시 만나는 방식으로는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2000년 이후 간헐적인 상봉 행사를 기다리며 기회를 얻으려 20년 가까이 애태운 이들은 이미 많이 늙었다. 1985년 고향 방문단으로 시작한 이산가족 상봉으로 직접 혈육을 만난 가족 수는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4,186가족 뿐이다. 그간 상봉을 신청한 실향민이 13만 2603명. 이 중 7만 5000여 명이 미처 혈육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실향민은 5만 7000명 정도인데 반 이상이 80대 고령이라 매년 4000여 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또, 건강 문제 등으로 상봉 행사에 갈 수 있는 대상자는 1만 명 안팎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실향민이라도 혈육을 만날 수 있어야 할텐데 상봉 행사마저 정기적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 어쩌다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 기회를 얻기 힘들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로또 당첨만큼 힘든 행운을 얻어 혈육을 만난다 해도 기쁨은 길지 않다.

    그러니 먼저 생사부터 알고 안부를 주고 받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순서다. 또, 이산가족 상봉 방식도 재검토해야 한다. 금강산 등지에서 일회적이고 제한적인 이벤트성 상봉 행사를 열어서, TV로 공개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가족 상봉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봉의 정례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만남이 정례화된다 해도 마치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진행되는 행사에 이산가족들이 내몰리고 아쉬운 만남 이후 또다시 기약 없이 이별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자유 상봉 또는 수시 상봉 방식이 되어야 한다. 분단 독일은 통일 30여 년 전인 1960년대부터 연금수혜자인 고령 이산가족을 우선 대상으로 정해 동서독 간 방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편지와 전화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달 평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성사되지 못했던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상설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돼선 안 되는 문제다. 남북 모두 한반도 평화를 말하는 상황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이슈일 것이다. 이 기회를 살려 오랜 숙원을 풀어야 한다. 남북미의 정치적 차원의 변수가 적용될 사안이 아니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생색내기용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이산가족 상봉은 분명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전면적인 생사 확인부터 시작해야 한다. 올여름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생존자 전원을 대상으로 ‘생사 확인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향후 남북이 모든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로 합의할 경우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이다. 조사에 응한 이들은 희망을 품게 됐을 것이다. 다시 좌절을 맛보게 할 수는 없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다. 이것이 비핵화 이슈와 별개인 인도적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야 한다. 생사 확인을 거쳐 서신 왕래, 전화 상봉, 화상 상봉 등의 길을 열어줘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랠 수 있다.

    지금 방식으로는 설사 상봉을 정례화해도 1년에 몇 번 등으로 한정해 많은 이산가족은 상봉 기회를 얻기 힘들 것이다. 정부 차원의 상봉이 불규칙하고 찔끔찔끔 이루어지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 통로를 통해 상봉한 이산가족도 많다. 통일부에 따르면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1990년부터 최근까지 민간 통로를 통해 상봉한 이산가족이 3402명에 이른다. 민간 통로를 통해 3866명의 생사가 확인되었고, 서신 교환이 이뤄진 것은 1만1467건에 달했다. 그들의 간절함이 전해진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선심 쓰듯 개최되는 이벤트성 상봉 행사는 재고되어야 한다. 다음달 정상회담에서는 이산가족의 최대 염원인 고향 방문까지는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면 상봉 정례화와 상설 면회소 설치에 대한 북측의 동의를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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