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포커스를 창간한 이듬해였다. 파커에 있는 병원에서 둘째 아이를 낳고 퇴원을 해서 집에 왔지만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두 달째 집 페이먼트를 하지 못해서 곧 집을 비워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택 차압이니, 숏세일이 급증해서 은행에서 강압적으로 쫓아내기 전까지는 그 집에서 살아도 괜찮다 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는 운이 나빠서인지 두 달 만에 바로 집이 팔렸다는 통지를 은행으로부터 받았고 곧 집을 정리해야 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처음 구입한 내 집은 숏세일로 날아가 버렸다. 벌써 10년이 더 지난 얘기다. 오늘 필자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576번째의 칼럼을 쓰고 있다. 애를 낳으러 병원에 갔던 그 주에도, 집을 빼앗긴 그 주에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써왔던 글이다.

     뉴욕타임스는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저널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지의 대명사다. 논조는 대체로 진보적이다. ‘진보적’이란 일반적인 관념보다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하고, 조금 더 앞서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스는 전쟁, 인권, 이민정책 등 주요 이슈마다 늘 그랬다.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최고 명성이 얻어진 것은 아니다. 사소한 듯하지만 다른 신문과 차별화된 '디테일'로도 꾸준히 신뢰를 쌓아온 게 오늘의 뉴욕타임스를 있게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2017년 3월 4일자에 무려 164년 전 기사의 정정기사가 실렸다. 1853년 1월 20일자, 꽤 부유한 집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났지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다가 12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흑인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을 소개한 기사에서 노섭이라는 이름이 잘못 표기돼 있었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또 올해 2018년 3월 28일자에는 한국의 유관순 열사(1902~1920) 부고 기사가 실렸다. 신문에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함께 ‘일제 식민지하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17세 때 감옥에서 사망했으며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그렇다면 뉴욕타임스는 100여 년 전 숨진 동양의 한 여성 부고기사를 왜 갑자기, 뜬금없이 기재했을까. 뉴욕타임스의 대답은 이랬다. ‘그 동안 우리 부고기사는 저명한 백인 남성 위주로 작성되었고, 이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세계 각국 여성들도 다루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남다른 채용 관점으로 한인사회에 혹은 소수 이민자들에게 환호를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첨단 기술분야 수석기자로 사라 정이라는 한인 여성을 채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자가 과거 백인 남성들을 비난한 글을 SNS에 자주 올린 것이 드러나면서, 이를 두고 경쟁 언론사들이 인종차별주의자를 고용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부당한 인종차별에 그렇게라도 맞선 것은 남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처사였다 하며 오히려 더 점수를 주었다.

    남과 달리 생각하고, 남과 달리 행동하는 뉴욕타임스의 '진보성'은 디지털에서도 드러난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유력 언론사로는 가장 먼저 온라인 유료화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금은 온라인 유료 구독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인터넷 공간의 모든 콘텐츠는 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뉴스도 정보도 모두가 공짜로 본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돈과 시간을 기꺼이 내겠다는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답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저널리즘' 전략이었다. 2017년 발표된 자체 보고서에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경쟁사와 차이가 미미한 기사는 쓰지 않는다’, ‘급하지 않은 기획기사는 다루지 않으며, 난해하며 원론적인 글은 쓰지 않는다’, ‘사진이나 동영상, 표 등을 사용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2010년 전후로 계속된 불황은 콜로라도의 언론사에도 찾아왔었다. 1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콜로라도 유력 일간지인 락키 마운틴 뉴스가 문을 닫은 2009년에는 덴버 중앙일보와 모주간 신문사가, 이듬해는 한국일보 덴버 지사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2015년에도 두어 개의 주간지가 또, 문을 닫았다. 그러나 포커스가 불황을 잊은 채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포커스를 사랑해준 콜로라도 한인 동포사회 덕분이다. 또 뉴욕타임스와 견줄 편집 방향은 아니지만, 나름 포커스만의 방향이 확실했기 때문에 그 험난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으리라 본다. 첫 번째, 발로 뛰는 콜로라도 한인사회 기사들이다. 한인사회에 있는 행사마다 참석해 성심성의껏 취재를 해왔다. 대충 사진 한 장 찍고, 건성으로 기사를 작성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마지막 이름 한글자까지 확인해가면서 정성스럽게 매주 생산되는 기사들이야 말로 포커스 신문의 강점이다. 두 번째는 독자들이 보다 쉽게 기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긴 기사를 간결화시켰고, 콜로라도 뉴스에는 사진 설명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빠르게 도왔다. 또,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신속 보도를 해옴으로써 주류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나서서 찾아주는 한인사회의 유일한 언론이라는 점도 포커스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콜로라도 청소년 문화축제를 통해 청소년 문화의 불모지인 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싹 틔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 외에도 많은 기획기사와 전문가 칼럼, 기사 실명제를 도입하여 콜로라도 뉴스를 가장 많이 보도하는 신문으로 그 위상을 정립했고, 매주 136페이지를 발행하고 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신문사의 이름이다. 포커스(FOCUS)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로, 초점, 중점, 중심, 중요한, 요지 등 말 그대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심에 있는 단어이다. 이 신문사의 이름은 오래 전 한국일보의 대선배님께서 만들어주신 이름이다. 처음에는 ‘F’ 발음이 힘들었지만, 미국생활의 햇수가 더해갈수록 신문사의 이름으로 생활의 중심, 논리의 초점을 뜻하는 ‘포커스’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창간 당시 9개의 신문사가 있었다. 당시를 상상만 해봐도 알겠지만, 포커스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그리고 주위의 시기 어린 시선으로 폄하될 때도 있었다. 언론의 기본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커스만의 강점인 발로 뛰는 기사, 전문성을 가진 인력,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 그리고 한인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까지 보태어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명실공히 멀티미디어 시대에 앞장서는 콜로라도 최대 언론사로 자리잡았다. 이제 신문, 라디오, 업소록, 웹사이트, 전자신문, 카카오톡 서비스, 페이스북, 문화센터까지, 그리고 지금 포커스와 연을 맺고 있는 직원이 10명이 넘으니, 소수인종 언론사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할 만하다.

    특히 동포사회는 포커스를 봉사단체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지난 12년간 필자는 사기치지 않는 건축업자를 가르쳐달라, 정직한 부동산 업자를 추천해달라, 빌려준 돈을 못 받고 있는데 법원에 가기 전에 신문사가 중재를 해줄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고, 이혼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장의 하소연을 들어주거나, 장가 못간 아들의 중매를 놓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전화도 받곤 했다. 한번은 아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에 갔는데, 변호사는 너무 비싸고 포커스 신문사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신문사로 전화를 했다는 독자도 기억난다. 그는 모든 궁금증과 어려움이 포커스로 전화하면 해결될 것 같다는 믿음에서 신문사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포커스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감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위기를 말한다. 이럴 때 뉴욕타임스의 어제와 오늘은 많은 신문들에게 등불이 되곤 한다. 그 등을 밝히는 기름은 진실 앞의 용기, 작은 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라는 것을 배운다. 미국의 변방, 한글 신문이 분투하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뉴욕타임스와 같은 개념있는 신문과 동시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도 깜깜한 밤에 갈 길을 환하게 밝혀줄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등불과 같은 존재로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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