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는 엠비(MB, 이명박 전 대통령) 것’이라고 법원이 공식 인정했다. 지난 5일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의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에서 16가지 공소사실 중 7가지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을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를 사실상 지배하고, 349억 원 가량을 횡령했으며, 직원의 횡령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31억 원대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 등 모두 16가지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이 전 대통령은 92세에 만기 출소한다. 만약 212억 원이 넘는 벌금과 추징금을 내지 못하면 최대 3년간 노역도 해야 한다. 11년 만에 의혹은 사실로 판명됐다. ‘다스는 누구 것인가?’ 이 질문에 법원이 답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6개월이었다.

    지난 4월 9일 재판에 넘겨진 지 182일, 5월 3일 첫 공판이 열린 지 158일 만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 5일 “다스의 실소유주가 피고인(이명박)이라는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가 받고 있는 혐의 중 349억 원대 횡령과 31억 원대 조세 포탈, 110억 원대 뇌물수수 가운데 67억 원이 다스와 관련 있다. 2007년 처음 의혹이 불거졌을 때부터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항변했던 그였기에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크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갖은 의혹으로 여론이 들끓었지만, 검찰은 수사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여러 이유를 대며 미적거렸다. 한때 수사를 아예 접을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결정적 제보가 검찰에 날아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몇 번의 반전이 이 전 대통령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원래 검찰이 꼽았던 ‘적폐수사’ 리스트에 이 전 대통령은 들어 있지 않았다. 장기간 계속된 국정원 수사로 검찰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커지는 의혹에 비해 증거가 미약하다는 판단도 들었다. 검찰 측은 다스는 10년 이상 제기된 의혹이며 새로 들여다볼 여지가 없다 여겼다.

    그러나 결국 이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건 바로‘같이 일을 해 왔던 사람들’이었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것도, 삼성으로부터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받았다는 것도,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것도 모두 측근들의 입에서 나왔다. 뇌물 혐의 수사의 백미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었다. 그는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나갔을 때 때마침 ‘엠비 메모’를 입에 넣은 채 씹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한 수사관이 이 전 회장에게 손가락을 물려 전치 3주의 교상을 입기도 했는데, 결국 ‘엠비 일가의 모든 치부’를 적은 비망록이 검찰의 손에 들어왔다. 엠비 수사를 돌아보면 참으로 ‘운칠기삼’이었다. 엠비는 검찰이 수사를 잘해서라기보다 주변 사람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몰락을 자초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다스의 실소유자'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소유권 분쟁은 서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소유권 사건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는 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검찰은 오히려 "당신 것이 맞는다"는 형태로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다. 결국 국가가 ‘네 것’을 가려준 소송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긴 하다. 검찰이 그가 다스의 실소유자라는 것을 전제로 범죄 혐의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법원은 소유권 판단에 있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증거 없이 관련자들 진술과 정황만으로 기업의 '사실상 소유권'을 인정했다.

    회사 소유자를 따질 때 명의가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명의자를 소유자로 보기 때문이다. 현재 다스의 주주명부에는 이상은 회장(47%), 이 전 대통령 처남 김재정씨의 아내 권영미씨(26%) 등이 올라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회사 서류, 입출금 내역 등도 있지만 그 자체로 소유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아니었다. 실소유자 다툼에서 핵심 증거인 명의자의 입장도 이번 소송에선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대주주인 이상은 회장이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라고 말해 준다면 명확하지만 그런 진술도 없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보유한 다스 지분도 없고, 이에 대한 이면계약도 없다. 그러나 법원은 김성우 전 다스 사장, 권승호 전 다스 전무 등 관계자들의 진술 및 정황을 유력한 증거로 들어 이 전 대통령을 다스의 실소유자라고 했다.

    재판부는 1시간 가까이 생중계된 선고 공판에서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다스 및 BBK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특검까지 꾸려졌음에도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결백을 주장한 피고인을 믿고 기대한 다수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국민을 속인 사실을 꼭 집어서 질타했다. 엠비는 다스 설립 때부터 자금을 모두 대고, 핵심 간부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웠을 뿐 아니라 아들 시형씨와 함께 주요 경영권을 행사했으며, 회사 운영상황도 정기적으로 보고 받으며 20년 가까이 비자금을 빼내 썼다.

    재판부는 다스 증자대금으로 쓰여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 의혹을 받았던 ‘도곡동 땅’ 판매대금도 이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전 대통령이 남은 판매대금 중 60억 원 가량을 사저 비용으로 쓴 점, 재산관리인이었던 처남 김재정씨가 이 돈으로 투자를 하다 손실을 보고 이 전 대통령에게 들킬까봐 걱정한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이 횡령한 다스 자금은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 처남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된 241억8천만 원과 이 전 대통령 가족이 다스 법인카드로 쓴 5억7천만 원을 합쳐 모두 247억 원으로 인정되었다. 다만 다스 자금으로 개인차량 에쿠스(5천만 원)를 구매하고, 선거캠프 직원 급여(4억3천만 원)를 지급한 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뇌물 중 가장 큰 액수를 차지했던 다스의 미국 소송비 대납혐의도 입증된다고 봤다. 2008년 4월 다시 미국 소송비용을 대납해 주겠다는 삼성의 제안을 이 전 대통령이 수락했다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자수서와 삼성전자 해외법인이 약속한 금액을 송금한 이메일,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문건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 전 대통령 임기 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특별 사면, 금산분리 완화가 이루어진 것을 미루어 뇌물의 대가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지금 이 전 대통령은 항소를 놓고 고민 중이다. 항소를 한다면 '다스의 실소유자' 부분에 대해서 또다시 치열하게 다투게 되겠지만, 여죄가 나올 가능성도 다분해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그 동안 명백한 증거와 정황이 있음에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부인해왔다.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까지 지내면서 국민을 속였고, 현재까지도 “다스는 형님 것”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이에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넉넉히’라는 주관적인 부사까지 동원해, 다스가 확실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유임을 명백히 했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이라고 항변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법원은 다스의 주식 3000억여 원이 그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선고로 다스 실소유주 논란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으면서 정계 입문 이래 20년 이상 국민을 속여온 엠비의 대국민 사기극도 일단락되었다. 대선후보 시절 국민들을 향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절규하면서 다스의 주인임을 부인했던 그의 말이 되려 새빨간 거짓말이 된 것이다. 15년 형량은 그의 죄과에 비하면 충분하다고 할 수 없으나 전직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국민을 우롱한 데 대한 사법적 단죄의 의미는 적잖다. 이번 재판에서 다스가 엠비 소유로 밝혀진 것은 단순히 소유 여부를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규명해야 할 의혹이 더 많다. 정치보복이라는 얘기가 나돌지 않도록 후속 수사도 성역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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