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인업소록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일은 일년 사이에 이 좁은 동네에서 참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타 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제작해 온 한인업소록을 넘겨보았다. 그 동안 문을 닫은 업체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신문사를 창간했을 무렵 수요일 밤마다 신문 마감을 해 놓고 가볍게 요기할 수 있었던 종갓집이 없어졌을 때도 서운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 간단한 안주거리, 또 푸짐한 공짜 반찬들이 우리에게 딱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서울장터 설렁탕을 덴버에서 더 이상 맛보지 못할 때도 아쉬웠다. 고춧가루 넉넉하게 쓴 서울장터의 김치와 깍두기는 입맛이 없을 때마다 생각이 난다. 좀처럼 다른 식당에서 볼 수 없는 쌈밥 때문에 자주 찾았던 대장금 식당도 그렇다. 특히 점심 때에는 꽁치 김치찌개가 인기가 좋았었다.

    지금은 LA에서 인기 있는 집으로 알려져 있는 신사동이 없어졌을 때도 아쉬웠다. 설렁탕, 꼬리곰탕 등 탕 종류와 메인 요리를 아주 잘하는 곳이었는데 막상 없어지니 참 서운하다. 미도파 식당은 이들과 다른 이유로 오로라에서 문을 닫긴 했지만, 여하튼 미도파 식당의 구수한 청국장과 푸짐한 돌판메뉴, 맛깔스런 겉절이를 덴버 한인타운에서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겉도는 침만 삼키게 된다. 얼마 전 문을 닫은 후루룩 짜장 집은 해물 짬뽕과 새우 튀김요리를 잘했다. 좀 늦게 음식이 나오는 게 흠이긴 해도, 아이들과 가족들이 중국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결국 문을 닫아서 안타깝다.

    나름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곳들이 문을 닫고 나면 서운함이 크다. 이외에도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식당, 비디오 가게, 한의원, 노래방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부동산 경기가 다소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리얼터들의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해 전업 현상도 자주 접한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였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했던 한인 신문사 대부분이 문을 닫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불황과 경쟁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만한 묘수를 찾아봐야겠다. 흔히 위기와 함께 기회도 온다고 한다.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공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오는데도 항상 위기만 강조한다. 그래서 위기는 피해야 하고 기회는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 이렇게 기회를 잡으려면 부득이 위기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우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극복한 업체가 생각난다. 바로 경쟁이 치열한 컴퓨터 업계에서 제 입지를 굳힌 인텔사이다. 기업에게 팔 것이 없어진다 함은 재앙을 뜻한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1980년대 중반 무렵 반도체기업의 선두주자였던 인텔사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1968년 창업된 인텔은 대다수 기업들이 한 개의 실리콘 칩에 더 많은 수의 트랜지스터를 넣기 위해 고심하던 통념을 뛰어넘는 일을 시도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컴퓨터에서 기억기능을 수행하는 칩을 만드는 일이었다. 인텔은 64비트 메모리를 시작으로 반도체 회사로서 화려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했다. 일본 메모리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와 과감한 원가절감으로 인텔을 비롯한 미국계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 주요 구매회사인 휴렛팩커드는 일본산 메모리 칩이 미국 회사보다 더 좋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하게 된다. 인텔의 내부 분위기는 ‘그럴 리가 없어’였다. 하지만 인텔의 CEO 앤드류 글로브 전 회장은 기존시장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마이크로 프로세서이다.

    하지만 1984년 경기가 악화되면서 메모리 시장은 꽁꽁 얼어붙게 되고 인텔 내부에서는 거대한 메모리 공장을 건설해서 일본에 당당히 맞서자는 의견과 좀 더 영리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첨단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결정적인 시점이 도래하였음을 기꺼이 받아들인 앤드류 전 회장은 주력 상품을 메모리에서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정하는 조치를 과감하게 취하게 된다. 일종의 혁명이었다. 이처럼 사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위험한 시도를 두고 훗날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죽음의 계곡을 건넌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86년 인텔은 ‘마이크로 컴퓨터 회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에 맞춰서 회사조직, 인력배치, 자원배분 등 모든 것을 변화시켜 나가게 된다. 오늘의 인텔은 일본기업의 도전이라는 위협 앞에서 다시 재탄생하게 된 회사라고 볼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한 인텔의 멋진 사례가 오늘의 불황에 맞서 싸우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척 크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업체들 몇몇이 눈에 띈다. 지난 10년간 한인타운에 여러 중국식당이 생겼지만 오히려 손님이 더 늘어난 진흥각이 그 첫 번째 사례이다. 몇 년 전 식재료비 인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하겠다면서 정중하게 공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장이 한결같이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하고, 음식의 양과 질을 더욱 알차게 챙겨낸 탓에 언제나 손님들로 붐빈다. 몇 해 전 한국에 나갔을 때였다. 정말 맛있다고 소문난 중국요리 전문점 앞에서 1시간을 기다려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짜장면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둘째 아이가 짜장면 한 젓가락을 맛보더니 “엄마 우리 동네에 있는 짜장면이 더 맛있다”면서 한국의 소문난 짜장면 집의 명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신라 식당도 노력해서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 위생 관련해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새 주인과 새 메뉴 개발로 올 여름 최고의 인기를 얻은 한식당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여름에는 냉면과 갈비,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면서는 찌개나 탕도 칭찬받을 만한 국물 맛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소반 식당은 한국의 유명한 한정식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는 건강식 반찬들이 즐비해서 좋고, 소공동 순두부 집은 덴버에서 유일한 가마솥밥 집으로 숭늉으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어 좋다.

    최근에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신명관 식당은 날마다 손이 많이 가는 반찬에 정성을 들여서인지 매일 발전하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최근 사장이 바뀐 서울바베큐는 다양한 메뉴와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라서 오픈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칭찬이 자자한 집이다. DMZ Pub은 술을 파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저녁식사를 하러 아이들과 가서 먹기에 딱 좋은 메뉴들이 많다. 특히 나오는 음식마다 정성스럽고 예쁘게 장식되어 있어 차려진 식탁을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다. 대박식당은 일단 널찍한 공간에서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특히 덴버에서 유일한 국밥 전문점인만큼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가동빌딩 2층에 위치한 맛나식당은 가장 알짜배기 수입을 올리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가면 제철에 맛볼 수 있는 버섯과 각종 나물반찬, 맛있고 인심 넉넉한 시골밥상이 기다린다.

    이렇게 열거를 하다 보니 타 주에 비해 한인 인구 수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불황을 잊은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식당들의 노력이 대견해 보인다. 누가 뭐래도 한식당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야 보기가 좋다. 꾸준하게 장사가 잘 되는 한식당들을 보면 계절따라 재빠르게 주력 메뉴를 바꾸어 놓는 센스가 돋보인다. 이처럼 위기와 경쟁에 주저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나서는 경영을 계속한다면 한인 업체들의 미래도 인텔사처럼 밝지 않을까. 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라는 사실을 새겨두자. 한인업소록에 기재된 업체 하나하나에 희망의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2019년 콜로라도 한인업소록 제작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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