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목요일은 미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땡스기빙데이(Thanksgiving Day) 즉,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라는 뜻의 ‘Thanks’와 드리다는 뜻의 ‘giving’이 합쳐진 이 땡스기빙데이는 말 그대로 한 해의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국으로 치면 추석과 같은 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오늘은 바로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왜 천국의 모형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약 4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20년 12월 11일, 유럽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미 동부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회의 종교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오게 됐지만, 미국에서는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땅에 도착한 첫 겨울, 혹독한 추위와 낯선 환경으로 인해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 102명 이민자 가운데 46명이 그해 겨울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그다음 해 가을에 나름대로의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그러자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그 해 거둬들인 농산물과 사냥으로 잡은 칠면조를 나눠 먹으며 감사의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 감사 축제가 바로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하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전통은 후세대로 이어지긴 했지만 이후 2백 년 동안은 개인별로 혹은 각 주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남북전쟁이 한창인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국가 공휴일인 추수감사절로 지정하게 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선포하면서 전쟁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과부나 고아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기를 간청하는 날로 삼자고 선포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는데 1939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으로 당기게 됩니다. 당시는 미국에 대공황이 한창일 때인데 12월 25일에 있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사람들이 쇼핑 그러니까 물건 구매를 더 많이 하도록 부추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서 2년 후인 1941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시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미국의 법정 공휴일인 땡스기빙데이로 지정하게 되고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땡스기빙에 고향 집을 찾아 여행을 떠난 미국인의 숫자가 약 4천6백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추수감사절인 목요일부터 주일까지 나흘 동안 쉬는데 그렇다 보니 멀리 타 주에 있는 고향 집도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찾아갑니다. 추수감사절 점심이나 저녁에 풍성한 추수감사절 식사를 즐기며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합니다. 각 명절마다 먹는 특정 음식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석에 송편과 떡국을 먹지만, 미국에선 ‘펌킨파이’라고 하는 호박을 넣어 만든 빵과 크랜베리라는 과일 소스 그리고 육즙을 곁들인 으깬 감자를 먹는데요. 무엇보다 터키라고 하는 칠면조 요리가 빠질 수 없습니다. 칠면조를 통째 오븐에 구워서 칼로 썩썩 잘라 나눠 먹으며 오래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한 주를 보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살펴봤고 진정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절기라는 말이 구약성경 레위기에 나옵니다. 거기에는 유명한 삼대 절기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기가 나오는데 오늘은 그 절기 가운데 초막 절기를 살펴 보면서 초막절과 추수감사절이 천국의 모형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구약의 초막절(장막절)과 수장절과 연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추수한 것을 곳간에 쌓고 이로 인해 감사한다는 면에서 구약의 수장절의 의미와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다를 바 없습니다. 칠일 간 초막에서 지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백 삼십 년 동안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세운 한 지도자인 모세를 통해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로 나와서 사십 년 동안 생활을 기억해 내야 했던 초막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지내야 했던 황량한 광야에서의 초막 생활은 그대로 우리네 인생의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고 저장하는 때인 수장절에 초막을 짓고 광야의 생활을 기억해야 했던 구약 절기의 뜻이 신약에 와서 그 본래적 의미가 없어질 리 없습니다. 추수로 인한 감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인도하실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만 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광야의 삶이라는 분명한 사실과 직결되며, 이 땅에서의 삶이 다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신약의 적지 않은 교훈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래의 '본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가나안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이 땅에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날인 동시에 미래에 영광스럽게 주어질 그 본향을 소망하며 고백하는 날이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절기를 지키는 날 입니다. 부활절과 오순절은 이미 '이루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신약의 추수감사절은 미래의 영원한 추수를 함께 바라보는 날이기 때문에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그 특별한 일을 생각하는 날이며, 오순절에서 시작된 추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 날에 마무리 될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농부고 아들 예수는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의 심정은 밭을 갈고 옥토를 만들고 그 곳에 씨앗을 심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풍성한 실한 열매를 기다리며 마침내 가을에 추수하면서 알곡은 창고에 들어가고 가라지는 불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마침내 하늘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추수 때가 오면 알곡 성도는 천국창고에 들어가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 못인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모쪼록 모두들 알곡성도가 되서 천국창고에 다 들어가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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