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수확의 계절인 가을, 지구촌 곳곳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벌어진다. 그 명칭과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조상과 신, 자연에 감사하며 풍요로움을 즐긴다는 축제의 의미는 비슷하다. 한국은 추석, 미국은 추수감사절, 중국은 중치우지에, 프랑스는 투 생, 러시아는 성 드미트리 토요일, 베트남은 테트룽뚜, 아프리카는 콴자, 인도 남부에선 퐁갈 날 등이 바로 그 축제의 날이다.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이번 주로 다가왔다.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다. 학교, 관공서 또는 기업체에서는 추수감사절 전후의 수요일과 금요일을 휴일로 정하여 주말과 주일을 포함한 닷새 동안의 휴가에 들어간다. 이런 긴 연휴의 추수감사절에는 여러 가지 전통이 있다. 첫 번째는 칠면조 요리다. 오븐에서 굽는 큰 칠면조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나누어 먹는 장면은 추수감사절의 상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생일 때 소원을 빌며 촛불을 끄는 의식처럼 위시본(Wishbone)을 부러뜨리는 것이다. 위시본은 칠면조 가슴살이 붙어있는 뼈로, 고기를 다 발라낸 후 잘 마른 뼈 양쪽을 두 사람이 함께 잡고 소원을 빈 후에 함께 그 뼈를 부러뜨리는 것으로, 긴 쪽을 가진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 뉴욕 맨하탄에서 열리는 Macy’s 백화점의 퍼레이드도 추수감사절의 전통 의식처럼 자리잡았다. 뉴욕 센트럴 파크 6 에비뉴를 따라 벌어지는 이 퍼레이드는 올해로 92번째를 맞았다. 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는 공중에 뜨는 거대한 풍선들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하늘에서 춤을 추는 광경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마지막 전통은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이벤트이다. 가족들이 함께 전략적으로 블랙 프라이데이를 준비하는 것 또한 추수감사절의 풍경이다. 추수감사절은 명절인 동시에 크리스마스와 신년 정초까지 이어지는 쇼핑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일년 내내 노리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날인 금요일부터 파격적인 할인판매가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날 새벽부터 미친 듯이 백화점과 할인매장으로 돌진해 물건을 싹쓸이 한다. 할인 폭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전날부터 상점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양보심도 많고 점잖던 미국 아줌마들도 이날만큼은 물건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뉴욕의 월가에서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을 검은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이는 연말 쇼핑 시즌의 시작인 이날부터 쇼핑 인파가 몰려들면서 유통업체들의 재무제표가 '흑자'로 돌아선다는 의미라고 한다. 뉴욕의 채권시장도 조기 폐장하고 본격적인 공휴일 모드로 접어든다. 한국 뉴스에서 봐왔던 민족 대이동이 미국 뉴스에서도 나온다. 4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향이나 관광지로 이동하면서 각 도시의 공항도 분주하다. 연휴기간 중 귀성 인파만 약 3천만 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를 따져보면 최소한 8명 가운데 1명은 고향과 가족을 찾아가는 셈이다. 한국의 추석처럼 떨어져 사는 부모님도 찾아가고, 직장 때문에 헤어졌던 가족들, 대학 진학으로 인해 멀리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인다. 이렇게 가족을 모이게 하는 역할만으로 최대 명절이라는 이름 값은 하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 추수감사절을 처음 맞았을 때는 그날 하루를 덤덤히 보냈다. 비디오 몇 편과 함께 말이다. 당시는 터키 요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다지 입맛을 당기는 요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 ‘Eat, Pray, Love’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이탈리안 친구 가족들을 위해서 미국 전통 칠면조를 구워주는 모습을 본 다음에는 나도 추수감사절 기분을 한 번 내보자는 생각에 마켓에 터키를 사러 갔었다. 여전히 큰 덩치로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큰 맘을 먹고 한 마리를 사서 요리 책에 나와있는 비법을 따라 해 봤지만 맛은 실패였다. 비록 맛은 실패였지만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보는 시도는 나름 의미 있었다.

     추수감사절은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가을걷이를 끝낸 후 인근의 인디언 족과 음식을 나눈 데서 비롯되었는데, 처음에는 주 단위로 열리는 소규모 축제에 불과했었다. 국가 명절로 제정한 것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1863년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했다. 그러다가 추수감사절이 연방 정부에 의해 법적인 공휴일로 공표된 때는 1898년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신에 대한 감사와 다른 인종 또는 타 문화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독교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전통적인 것으로서 미국 주류의 생각을 반영하며, 미국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나 아동 도서들은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자랑스러운 미국 형성 초기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주류의 전통적인 해석을 꾸며진 신화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원래 추수감사절은 청교도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본래부터 오랜 동안 추수감사절을 지켜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일상에서 얻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한 해에 여섯 차례의 추수 감사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때문에 원주민들이 추수감사절을 지켜왔었다는 사실을 생략하고 있는 전통적인 해석은 기독교 침략자들이 이 전통을 미국 원주민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또, 이들은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럽계 이주자들 간의 우정과 평화적 관계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이들 간의 전쟁과 유럽계 침략자들이 벌인 살육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있는 데서 심각한 역사적 왜곡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분분한 역사의 해석이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최대 명절로,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모여 칠면조 요리를 즐기는 시간이 되었고, 하나님께 결실과 수확의 은덕을 돌리며 감사하는 날이라는 유래는 변하지 않는다. 한때 한국 TV 프로그램이었던 개그 콘서트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코너가 있었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걱정했는데 수능 시험에서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 감사하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서 발 냄새 걱정을 했는데 동료가 청국장을 시켜서 감사하다, 게임한다고 PC방에서 밤늦게 집에 와서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술을 먹고 더 늦게 집에 오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등 생활의 모든 것에 감사하자는 의미를 담은 풍자개그 코너이다. 당시 미국에 사는 세 살짜리 아이들까지도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를 율동에 맞춰 따라 할 정도니 그 인기가 대단했다. 그렇다면 이 프로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율동과 사건 정황이 재미있긴 하지만, 이보다도 우리가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사소한 것에 감사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해 추수감사절의 저녁식사 자리에서는‘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넣어 대화를 해보자. 이렇게 예쁜 딸과 아들을 가지게 해 준 것도, 많지는 않지만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벌 수 있는 것도, 이런 불경기에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앞으로 1년은 거뜬히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것에도, 작고 누추하지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것에도,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낼 가족이 있는 것까지,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터키가 부담스러우면 닭이나 햄이면 어떤가. 음식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감사의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명절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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