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급히 나갔습니다. 장인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중환자실은 7인실이었습니다.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오직 병원만을 65일 동안 드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른 환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입니다.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하든지 아니면 요양병원으로 갑니다.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인지 감정이 아주 예민했습니다. 맞은 편 할아버지는 입원할 때에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며칠 후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제일 먼저 스마트 폰을 찾았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의식이 없다고 하니 채무자들이 돈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채무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는 애인(?)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70대이고 애인들은 60대라고 합니다. 왜 혼자 사는지는 모릅니다만 아무튼 고물상을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지가 사귀는 애인은 적어도 3명은 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전화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병 온 애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분을 간병하시는 분은 60대 전문 간병사입니다. 간병사는 문병도 오지 않는 할머니들에게 전화하는 할아버지를 놀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애인들이 꼭 온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딸이 병원에 들렀을 때 딸도 아버지를 놀렸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딸이 5만원 내기를 걸었습니다. 애인들이 한 명도 문안을 오지 않아 결국 딸이 5만원을 챙겼습니다.

       옆 침대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환자 명패를 보니 40대 남자였습니다. 환자의 어머니와 아내가 서로 껴안고 우는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부간의 사이가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나중에 때린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만 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큼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계속 직장에 다니겠다고 대답하자 시어머니가 뺨을 때렸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뺨을 때릴 정도라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약속한 돈을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오래 드나들다 보니 저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목사 사위가 2개월 작정으로 간병하러 왔다는 소문이 난 것 같았습니다. 저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간병사 P씨는 저에게 상담을 받고 싶어 여러 번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남편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곧 재판을 받을 예정인데, 감옥에 갈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약 1년 전쯤 음주운전으로 걸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사고가 경미했기 때문에 훈방조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3중 추돌사고로 5명이 입원했던 큰 사고라고 합니다. 상담 당시까지 피해자 3명과는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변호사를 살 돈도 없어 국선 변호사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데 걱정으로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기도 중에 점점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3차례 함께 기도했습니다. 가정을 위해 간병사인 아내는 일주일에 주일 하루만 쉬면서 24시간 간병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남편은 술 마시고 사고를 내니 참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남편은 쉬고 있었던 교회에 열심히 나가며 술은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고 합니다. 합의해 주지 않았던 피해자 2명도 합의해주었다고 합니다. 대각선 방향의 침대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의식도 없고 얼굴은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나이는 40대 초반의 여성이었습니다. 주로 남편 Y씨와 친정어머니가 간병했습니다. 젊기 때문인지 회복이 빨랐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남묘호렌게쿄’ 신도라고 합니다. Y씨 부부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성도라고 합니다.

       Y씨는 제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상담을 원했습니다. 주위에서 신학을 권하는 사람이 3분 정도라고 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보니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저는 Y씨를 부르기 위해서 사고를 일으켜 신학을 하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잔인한 하나님, 두려움을 주는 하나님, 조폭만도 못한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비신자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이지, 믿는 사람은 천사가 보호해주기 때문에 절대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고는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를 계기로 인생을 깊이 생각해보고 짧은 인생 전도자로 사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신학을 한다면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의 말을 듣고 Y씨는 큰 위로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잠시 틈을 내어 약식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를 했습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저의 갑상선에 4개의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중 3개는 크기가 작고 동그란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크기가 제법 크고 톱니바퀴 모양이었습니다. 검진한 의사의 소견은 암세포인지 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측 본부장은 당장 바이옵시(미세침 흡인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하게 권했습니다. 저는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당장 예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전문의사가 당일 자리에 없어 다음 주로 예약을 하고 숙소로 왔습니다.

      만약 암이라면 수술을 받을 것이고 평생 호르몬 약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암인데 수술하지 않으면 갑상선 바로 옆에 있는 임파선에 전이될 가능성이 높고, 전이가 된다면 전신으로 암이 번지게 되어 손을 쓸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오늘 부르신다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는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아쉬움은 없는지도 물었습니다. 저의 공로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저의 죄를 담당해 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간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쉬움 없이 갈 수 있겠다는 평안함에 감사합니다. 다음날 바이옵시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