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지가 베트남의 수도인 천년 고도(古都) 하노이로 결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달 27∼28일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면 대규모 경제적 보상을 할 수 있음을 재차 역설했다. 그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장소로 여러 곳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2차 담판의 장소로 대미 승전국인 베트남이 선정되었다. 미국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보다는 경호 문제 등을 들어 중부 휴양도시 다낭을 선호했다. 다낭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요새와 같은 구조다. 또 미국은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 때 다낭에서 이미 경호와 동선 등의 준비를 마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측에서는 편리한 곳일 수 있다. 반면, 북한은 하노이를 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이 제공하는 무대에서 회담을 하기보다 자신의 전통적 우방국인 베트남에서 외교활동을 한다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또, 하노이에는 북한 대사관이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 실무 준비에도 유리하다.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도 개혁·개방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룬 베트남의 수도를 김 위원장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하노이를 반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은 김일성 주석 이후 54년만이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방문은 경제적 측면과 외교적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공산체제를 유지하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대표적인 '체제전환 국가'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수교를 맺었으며, 1967년 무상군사지원·경제원조 협정을 체결했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 11월과 1964년 10월 두 차례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 당시 호찌민 주석과 정상회담 했었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북한이 공군병력을 파견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면서 '혈맹' 관계가 됐다. 하지만 19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북한이 베트남을 비난한 뒤 양국은 대사를 철수시키며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1984년 양국은 대사를 다시 파견했으나, 1992년 베트남이 남한과 수교를 시작하면서 그 관계는 이내 다시 소원해졌다. 이처럼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김 위원장은 집권 후 베트남에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드러내 왔다. 지난해 11월 할아버지인 김일성 위원장이 베트남을 방문한 지 60주년을 맞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하노이에 보낸 것도 김 위원장의 의도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베트남 방문으로 인해 소원해진 양국 관계가 다시 돈독해져 활발한 교류의 물꼬를 틀지도 관심을 끈다.

       그러나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 발표 직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평양 방문 결과를 보면 기대 이하였다. 북한이 약속했던 비핵화 조치의 핵심은 영변 핵 시설의 폐기와 검증에 있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핵분열 물질, 무기, 미사일, 발사체와 기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보장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성과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반감이 컸던 핵 시설 리스트 제출도 미뤄졌다. 또,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운반 수단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제거하고 북핵의 존재는 사실상 동결하는 수준의 타결에 머물 것이라는 보도가 공공연해지면서, 대한민국이 원하는 비핵화의 로드맵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이구동성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실패한다면 북한은 당당히 핵 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중·단거리 핵무기 사정권에 놓여 있는 일본이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

       일본도 핵을 갖겠다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면 동북아는 중국·일본·러시아·북한 네 나라 모두 핵 보유국이 되고 한국만 유일한 무핵(無核) 국가가 된다. 전 세계 전문가들은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을 내 놓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에 매달려 '평화'만 외쳐온 한국은 닭 쫓던 개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미군 주둔 방위비를 깎고, 군사훈련도 줄이고, 전방 초소도 허물고, 대북 제재를 풀어달라며 간청하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가동 등 온통 평화 무드에 열중하고 있다. 국민도 덩달아 안보에는 관심을 덜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경제는 생활 문제이고 안보는 생존의 문제이다.  이것이 대한민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핵 보유론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이유이다. 북핵을 규탄하면서 우리가 핵무장을 거론하는 것이 모순일 수 있으나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미국과 북한의 2차 담판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도 핵 보유건을 공론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핵 폐기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이 작년 연말 이후 계속 미뤄져 오다가 마침내 열리게 됐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회담이 성사되는 모양새가 찜찜하다. 날짜를 박아 정상회담 개최를 먼저 발표한 미국은 북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1차 북미 싱가포르 합의문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 체제 구축'이 먼저 나오고 회담 목적인 '비핵화'가 뒤로 밀린 이유다. 북한은 이후 미국이 비핵화를 요구할 때마다 "미국은 싱가포르 초심을 지켜라"고 큰소리를 쳤다. 비핵화 세부 사항을 따지는 실무 협상은 피하고 즉흥적인 트럼프를 상대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2차 회담도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시기와 장소가 확정됨에 따라 북미 양측은 2차 정상회담까지 추가 실무협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벌써부터 트럼프의 종전선언과 북한의 제재완화를 포함한 비핵화 협상 내용을 놓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2차 베트남 담판에서는 북으로부터 온전한 핵 폐기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한 약속을 받아내야만 의미가 있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둔 1차 정상회담의 한계를 넘어 반드시 실질적 성과를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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