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되었다. 그에 따른 후폭풍도 거세다. 세기의 담판이라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서 이렇게 결렬된 정상회담은 지금까지 없었다. 실무급에서 미리 다 만들어놓은 합의문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게 정상회담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2차 회담을 놓고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와 김정은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셈법과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법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굿딜'도 '배드딜'도 아닌 '노딜'(No deal. 합의 무산)로 끝난 결정적인 이유다. 회담 결렬의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폐기할 의지 없이 제재 해제만 요구했다.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하려는 비핵화의 간격이 너무 컸다. 북한은 미국에 유엔이 채택한 대북제재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에 대해서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 거론한 제재 5건이 해제되면 사실상 전면적 제재 해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7월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를 규탄하며 대북제재 결의 1695호를 채택한 이후 2017년 12월 23일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까지 총 11건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제재 결의안은 ‘2270’ ‘2321’ ‘2356’ ‘2371’ ‘2375’ ‘2397’ 호 등 6개다. 북한의 외무상 리용호가 지목한 5건의 제재는 북한 기관과 개인을 제재리스트에 포함시키는 내용이 전부인 2356호를 제외한 나머지이다. 2016~2017년 채택된 대북제재는 매번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강도가 셌다. 2016년 이전에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의 ‘불법적인 행동’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면, 2016년 이후에 채택된 대북 제재는 북한 자체를 불법적인 존재로 보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제재의 강도가 높아졌다. 특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에 대응해 나온 유엔 제재 결의안 2270호는 북한의 주요 수입원인 광물 판매에 대해 ‘분야별 제재’를 처음 적용했다. 민생 목적을 제외한 석탄, 철, 철광 수출을 금지했다. 2371호는 북한의 석탄 수출 상한선을 아예 없애고 전면 금지시켰다. 석탄은 북한의 최대 수출품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북한의 외화 수입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조치였다. 북한의 해산물도 수출 금지 품목에 포함시켰다.

      북한과의 합작사업 신규 및 확대도 금지됐다. 참고로 남북 경협사업도 2371호의 이 조항에 저촉된다. 유류 공급까지 제한하는 강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ICBM 화성-15형을 발사했다. 유엔 안보리는 곧바로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했다. 이 제재로 대북 정유제품 공급량 상한선이 기존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또, 유엔 회원국 내에서 소득 활동을 하는 모든 노동자를 북한으로 송환토록 했다. 아울러 북한의 수출금지 품목을 식용품 및 농산품, 기계류, 전자기기 등으로 확대했다. 나아가 유엔 회원국에 입항한 대북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나포·검색·억류 조치를 의무화했다. 회담 결렬 직후 미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북한이 제안한 작은 것 즉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이런 제재를 모두 풀어주지 않은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나쁜 합의를 하는 것보다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은 것이 낫다”는 뜻이다.

      사실 대북 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의 경제적 상황은 극한에 이르렀기 때문에, 북한이야말로 이번 대화에 큰 기대를 걸어야했다. 핵실험을 멈췄으니 유엔 제재를 풀어주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게 김 위원장의 셈법이었다. 김정은 '영변폐기=비핵화' 였고, 트럼프 '비핵화=핵무기 폐기'라는 결론을 가지고 평행선에 놓여 있었다. 다시 말해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폐기만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모든 핵시설과 핵무기 폐기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에 대해 그만큼의 가치를 매기지 않았다. 더 중요한 '플러스 알파'를 되레 원했다. 그래서 협상장에서 다른 우라늄 농축 비밀 핵시설 문제를 거론했다. 평양 인근 남포의 강선발전소 비밀 핵시설을 지목하고 신고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 실무협상 때도 거론되지 않은 '제3의 시설'이다. 미국은 전체 핵 시설과 핵탄두 목록 신고를 다시 요구했고, 핵무기를 운반하는 ICBM 등 미사일 포기 시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결국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의도는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김정은은 김씨 왕조 체제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다. 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한 안전판이 핵이라고 믿고 지난 25년 동안 나라의 모든 것을 쏟아 왔다. 북한은 90년대 중반 수십만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을 감내하면서도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렇게 얻은 핵을 김정은이 포기하겠는가. 전 세계에서 핵실험까지 성공한 나라가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없다. 이번 회담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의 말에 진실성이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김정은이 정말 핵 포기를 결단했다면 우라늄 농축시설과 핵폭탄을 신고하고 검증·폐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북미가 다시 만나도 정치성 이벤트만 되풀이될 뿐이다. 북핵 폐기를 위한 대북 협상은 김정은이 최소한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토대에서 시작돼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진짜 비핵화의 길도 열린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해제 교환을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김 위원장의 셈법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북미 두 정상은 당분간 양보없는 '벼랑끝 전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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