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지르고 보자’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필자의 생활철학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필자의 생활은 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군인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의 승낙을 절대로 받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내가 서울로 대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방학 중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집에 내려가지 못한다는 거짓말까지 하며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 것도, 어렵다는 언론고시 1차, 2차를 통과하고 마지막 3차 면접을 남겨두고 그 전날 보따리를 싸서 아프리카 탐험대에 합류한 것도, IMF가 터져 미국 유학을 포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돈 벌면서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태평양을 건넜던 것도 모두 이런 생각에서 비롯됐었다. 일단 이‘저지르고 보자’라는 나의 생활 철학은 많은 도전을 하게 만들었다. 반면 쓸데없는 고생도 많이 하게 됐다. 특히 마지막 도전이었던 미국행은 더욱 그랬다. 이렇게 일을 저지를 때마다 고생을 하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떠벌리고 저지르는 것보다 끝맺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콜로라도 언론사에도 불황이 찾아왔다. 지난해 1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콜로라도 유력일간지인 락키 마운틴 뉴스가 파산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락키 마운틴 뉴스지가 상황을 발표하면서 덩달아 덴버 포스트지 또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언론사들의 경영악화 실태가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했었다. 이 파산신청과 함께 매각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공개적’이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신문을 통해서 발표했다는 일이다. 또, 문을 닫으면서 락키 마운틴 신문 대신 덴버 포스트지를 받아볼 수 있고 환불도 가능하다면서 자세한 문의 정보도 웹사이트를 통해 꼼꼼히 알려준 기억이 난다. 한국 기업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특히 과대포장이 필요한 신문사들은 경영악화를 치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이 곪아 터질 때까지 태연한 척하면서 구독을 강요하고, 광고도 받으면서 분별없는 일을 일삼는다. 내일 문 닫을 것을 알면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신들과 함께 해온 독자와 광고주, 그 사회 모두를 속이는 일이다. 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초 중앙일보 덴버지사가 문을 닫으면서 구독료를 선불한 사람들은 난감했다. 하루 아침에 없어져 버린 신문사에 광고주들도 당혹했고, 한인사회도 당황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한국일보 지사까지 흔들리고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경영진이 바뀌고,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도 떠나면서 설마 설마 했던 분위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형식상은 한 달 동안 휴가기간이라고 하지만 일간지가 한 달을 쉰다는 의미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동종업종으로서 본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휴간이면 휴간, 폐간이면 폐간에 대한 알림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독자와 광고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아닌 척 떠벌리면서 광고 수주 받고, 건재한 업체인양 눈속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감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신문사에서는 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 물론 한달 뒤 심기일전해서 신문을 다시 발행하면 다행스럽지만, 지난해 중앙일보가 문을 닫으면서 은근슬쩍 넘어간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될까 걱정스럽다.

지난해 초 한국위성방송이 문을 닫으면서도 1년치 시청료를 한꺼번에 지불한 한인들이 피해를 봤다. 본사자체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피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인 가정에 많이 보급된 탠 TV가 곧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싼 시청료에 다양한 한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결국 다음달 8월30일부터 디렉TV에 흡수된다. 벌써부터 탠 TV 가입자들은 또다시 당할까봐 짜증이 나 있다. 처음에는 인수하는 회사측에서 쉽게 처리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행히 탠 TV시청료를 선불한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크레딧 프로그램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나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포커스 또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편집국장 김현주>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