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낯선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필자가 사는 커뮤니티의 매니저가 일괄적으로 보낸 편지였다. 학교 간다고 아침에 집을 나선 고등학교 학생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동네에서 이 친구를 본 사람이 있으면 제보를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어봤다. 동네에서 몇 번 스친 것 같기는 하지만, 같은 학교 학생이 아니어서 자세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이튿날 아이가 자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 이상 아이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체리크릭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두 명이나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체리크릭 고교는 콜로라도의 8학군이라는 체리크릭 학군 중에서도 최고의 학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인 학생들이 상당히 많이 다니는 학교이기도 하다. 같은 학군의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체리크릭 고등학교는 부자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면서 이질감을 표현하는 아이들도 본 적이 있다. 학교 성적 랭킹도 상당히 높다. 그래서 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전입까지 할 정도로 극성스러운 한인 엄마들도 여럿 봤다. 그만큼 학군의 중심에 있는 학교라는 뜻일 게다. 그런데 3월 중순 무렵 이 학교의 한 학생이 자살했고, 그로부터 약 일주일 지나 두번째 학생이 자살을 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의 자녀들이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서, 마치 아들의 친구들이 죽은 것같아 더욱 안타까웠다. 미디어에서는 미성년자들의 모방범죄를 우려해 자세한 사망 원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믿을만한 주변의 학부모들에 의하면 한 명은 왕따로, 또한 명은 성적비관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콜로라도 전역에서 청소년들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0세부터 24세 사이의 연령층에서 533건의 자살이 발생했다. 콜로라도주 검찰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40건의 청소년 자살이 발생했다. 그리고  올 1월에는 포 코너스 지역의 중학생 두 명이 자살했고, 지난 해 10월에는 센테니얼에 있는 아라파호 고등학교에서 2 명이 3 일 사이에 자살했다. 또한 지난 2월에는 15세의 남학생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후 자살하는 사고가 잇달았다. 이후 학군에서는 아이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심리 상담이나 자살 방지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학군 측에서 발표한 아이들의 자살 이유를 정리해 보면 친구관계, 성적고민, 정신질환인 우울증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청소년기에는 급격한 신체적, 인지적 발달이 이루어진다. 또래들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면서 사회기술을 습득하는 시기이다.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부모와 분리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인지적, 행동적 대처 전략이 부족하고, 정서적으로 자기 조절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다양한 문제해결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려울 때 해결할 방법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직접 도와달라는 표현을 못할 때도 있다. 청소년이 자살 시도를 했을 때는 단순히 주의를 끌려고 하는 행동으로만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또, 청소년 시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면 또래들과 먼저 의논한다. 그러나 서로 해결 방법을 모르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대화를 주고 받다가 동반자살이나 모방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요소들은 학교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낼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2세들 만이라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면, 24시간 친구찾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는 것이다. 학교 생활에서 가장 상처를 많이 받아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원인은 ‘왕따’와 '성적비관'이다. 이 중 왕따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다. 청소년들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런데 밥 같이 먹을 친구조차 없다면 당연히 학교 가기가 싫어진다. 이러한 상황이 심화되면 대인 기피증이 생기고, 우울증에 직면한다. 한국에서도 10~19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 중 91%는 정신건강학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중 60%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이들은 도움의 손길을 원하면서도 어른에게 쉽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이곳 아이들은 부모가 차로 데려다 주지 않으면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도 쉽지 않다. 학교 외에는 부모가 다니는 교회를 가서 만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학교나 교회 등 한정된 장소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더욱 위축되어, 고민이 깊어질수록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때 또래 친구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 한인 커뮤니티에 널리 알려져 있다면 효과적일 것 같다. 힘들고 외로울 때 또래 친구가 옆에 있어 준다면 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나 동호회를 통해 소규모 만남들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를 위해 각 교회의 청소년 사역담당자 혹은 청소년 심리전문가들이 팀을 꾸려 ‘좋은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행해 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선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제대로 된 청소년 전문가를 찾는 것 또한 난해하다. 그러나 이는 시행착오를 거쳐서라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이다. 우울증에 빠진 아이들에게 단 하루라도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과 함께 놀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끔찍한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 만들어주기 프로젝트에 이어 어른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게임 그룹’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굳이 공부만 하는 스터디 그룹만 칭찬받을 이유가 없다. 모여서 건전하게 게임하는 것이 숨어서 마리화나를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24시간 핫라인’을 개설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요즘 백세 시대라는 타이틀 아래 실버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이다. 이에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이 유스 프로그램이다. 실상 실버보다 더 많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세미나도 좋다. 심리 상담소를 설치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어른들의 고정관념 속에서 진행되는 세미나 혹은 상담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의 근육’을 탄탄하게 키워줄 구체적인 방안이 범 한인사회 차원에서 모색되어지길 바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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