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결국 전면전에 나섰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1100여 가지 전략 물자에 대한 한국 수출을 일본 정부가 직접 틀어쥐고 일일이 규제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달 반도체 소재 3종에 이어 2차 경제 보복을 단행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물밑 중재와 한국의 거듭된 경제 보복 철회 요청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강하게 성토하며 맞대응을 경고했다. 양국 간에 총성 없는 경제적 전면전이 시작된 셈이다.

      화이트리스트, 즉 백색국가란 수출 심사 우대국을 말한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안보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린 우방국가로서, 일본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 허가 절차 등을 간소화하거나 면제해 주는 우대 국가들의 목록이다. 블랙리스트와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국가들 사이에 해외로 수출되는 제품은 안보상의 문제가 없는지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지 제품별, 서비스별로 심사를 하는데, 화이트리스트 백색국가로 지정되면 절차상 간소화 내지는 면제를 받아 교역과 통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반대로 여기서 배제되면 교역에 상당한 애로를 겪는다. 제품이나 물자를 들여오지 못해 최악의 경우에는 한 나라의 산업 전체, 국가 전체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2019년 7월까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체코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미국 캐나다 한국 등 27개 국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2019년 8월 2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면서 26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일본이 한번 지정한 백색국가를 리스트에서 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가리아와 아르헨티나, 그리스, 헝가리보다 못한 처우다. 이는 양국 갈등이 위안부 합의와 징용 문제 등 역사 갈등의 범위를 벗어나 안보의 영역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사태가 발발하면서 한국이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품목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 식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에 의존하는 품목이 많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한일 주요산업의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4227개 정도이다. 이 중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은 253개, 90% 이상인 품목은 48개로, 금액으로는 약 28억달러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예를 들면 화학공업 연관 생산품은 지난해 5억5천만달러를 외국에서 수입했는데, 이 중 98%인 5억4천만달러어치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광물성 생산품(97%), 차량 항공기 선박 수송기 관련품(98%), 기계류와 전기기기 및 부분품(92%) 등은 일본 의존도가 90%를 넘었다.

      분석 결과 한국은 화학, 금속, 기계, 전기전자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 일본에 절대 열위 상태였다. 특히 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도도 상당해 큰 피해가 예상된다.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소재이다. 이들 제품은 일본에서 수입할 때 3년에 한 번만 허가를 받으면 됐다. 하지만 지난달 4일 이후 건건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규제 이후 허가는 제로 상태이다. 또, 수입 의존도가 50% 미만인 전략물자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이 미래성장동력으로 꼽는 수소 자동차의 핵심 소재는 탄소섬유이다. 지난해 탄소섬유의 일본 수입 비중은 39%에 그쳤지만, 고품질이 필요한 분야는 일본 제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제징용 판결에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아베 정권이 경제 보복으로 나온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과거사를 둘러싼 정치외교적 분쟁을 무역과 연결한 조치는 합당치 않다. 이번 조치는 누가 봐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그런데도 “안보상 수출 관리 재검토”라고 둘러대는 것부터 떳떳하지 않은 결정이다. 앞서 2000년 하나오카, 2009년 니시마쓰 건설, 2016년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화해했을 당시 일본 정부는 민간의 일이라며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만큼은 일본 기업의 배상 움직임을 정부가 막아서면서 국가 간 다툼으로 비화시켰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재외동포 사이에는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인 ‘보이콧 재팬’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노노재팬이라는 사이트에서는 일본 상품을 생활, 음식, 가전 등 품목별로 구분해 대체할 수 있는 상품정보를 상세히 적어놓았다. 높았던 렉서스의 콧대도 완전 꺾였다. 유니클로의 매상도 하염없이 곧두박질 치고 있다. 근대화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최초의 불매운동은 1920년 일제강점기의 물산장려운동이었다.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을 기준으로 하면 히타치가 재일 교포의 취업을 차별했던 1974년, 위안부 모집 문서가 발견된 1992년, 일본담배 퇴출운동이 있었던 1995년,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1996년,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던 2001년,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했던 2005년, 일본이 자국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했던 2008년,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했던 2013년에도 불매운동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일본에 의존해 왔으며, 일본 제품을 꾸준히 선호해 왔다. 그 간의 불매운동은 별다른 결과를 낳지 못했지만, 이번 만큼은 국민들의 의지가 오랫동안 유지되길 바란다.  일본이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킨 사실은, 전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일본이 한국에게 모욕을 준 것과 같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현 정권에 대한 비난도, 일본에 대한 규탄도 길게 가면 안된다. 그 의지와 분노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상응하는 단호한 조치’도 좋지만, 현 정부는 기업과 시민이 참고 견뎌야 할 피해를 미리 헤아려 최소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아무리 결의를 다지더라도 경제 전쟁을 명분만으로 이길 순 없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상당 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해 온 저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언제든지 일본의 경제침략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경제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다.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통한‘탈(脫)일본’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소재부품 산업의 자립이야말로 선진국 진입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기업의 소재부품 연구개발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며, 수입 거래 국가들을 다수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부터 우리는‘한국 경제를 탄압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아베 정권의 이번 도발을 한국 경제를 세우는 천우신조(天佑神助 )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경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입성하는 날, 보란 듯이 “땡큐, 아베!”를 외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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