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의 사명>
  어떤 한 사람이 코끼리 앞을 지나가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코끼리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코끼리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코끼리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한마디 하니까 코끼리가 그냥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지요.“내가 뭐하는 사람인 줄 아니... 내가 이민교회 목회하는 목사야”그랬더니 코끼리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번엔 코끼리 고개를 흔들어 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봤지만 아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이 사람은 코끼리 귀에 뭐라고 한마디 하니까 코끼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랍니다. 이번에 또 뭐라고 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 너 이민교회 목회 좀 해볼래?” 이민목회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유머 중에 하나입니다. 조국과 고향을 등지고 나그네 삶을 살아온 이민자들의 고통과 아픔이 배어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모가지를 짓누른다는 모기지나 렌트비, 비싼 의료보험로 인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의료 현실, 차가 없이는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는 환경, 인종차별, 능력과 재능이 있지만 언어로 인해 막힌 길들, 결국 이런 스트레스를 쏟아부을 곳은 교회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크리스챤 신문사에서 조사한 내용 중에 이민목회가 어려운 여러가지 이유들을 소개했는데, 내용을 보면 목회자와 교인 간 갈등(21.6%), 교육 스탭진의 부족(18.57%), 자체 교회건물 없음(16.6%), 어려운 재정(11.80%), 한인 2세 교인과의 친숙치 못함(9.4%), 목회자 탈진(8.5%)들을 뽑고 있습니다. 이민생활에서 겪는 일상적인 아픔들이 이익에 상관없이 모여지는 자유로운 교회공동체에선 여과없이 표출될 수 있고, 교회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인정받고 싶은데 교회에서까지 소외당하거나 차별을 당한다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분노하며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도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떠나가고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라도 이런 마음들이 표현되는 것 참 다행한 일입니다. 교회가 이런 상처와 고통을 쏟아내고 위로와 치유의 몫을 감당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귀한 자리에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참 기쁩니다. 마음껏 쏟아내시고 토설하시며 통곡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곁에 있는 나의 이웃도 같은 고통속에 있음을 함께 느낄 수만 있다면 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겠죠.

<이상한 사람들>
     요즘에 제가 찾아가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비정상적인 삶,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지만 모두가 가는 흔한 길이 아닌 것에서 느끼는 감칠맛 나는 감동을 찾아 맛보는 것입니다.  개신교목사가 수녀를 꼬셔서 결혼하고 홈리스들이나 실직자를 위해 밥해주는 목회를 하는 밥퍼목사의 이야기, 유명한 회사의 그룹 부회장이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 존경받는 신학자며 교수이고 사제였던 헨리나우엔이하바드대학을 떠나 정신지체장애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며 그들 속에서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피웠던 일, 최고의 직장, 안전한 환경, 보장된 미래를 내려놓고 아무것도 보장해줄 수 없는 선교지로 기꺼이 떠나는 어떤 선교사의 이야기, 선교지에서 아내가 강도에게 피살되어 깊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다시 그 땅을 찾아가는 어떤 선교사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런 이야기를 대하면 아직 세상엔 살맛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새벽묵상기도회 때 한 집사님이 나누었던 이상한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이집사님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친분이 있는 한집사님 소유의 집인데 시애틀로 이사가시면서 그 집을 이 집사님에게 렌트를 주고 떠난 겁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렌트비를 보낼 때 주고 싶은 만큼 보내고 주고 싶은때 보낸답니다. 적게 보낼 때도 있고 조금 많이 보낼 때도 있는데 어느 날인가는 그집사님이 전화를 걸어서는 “야 ! 조금만 보내”하고 많이 보냈다고 핀잔을 준답니다. 참 이상한 집주인입니다. 렌트비 며칠만 늦어도 독촉이 심하고 어떤 경우는 바로 쫓겨나기도 하는데 주면서도 당당하고 받으면서도 미안한 관계-흔히 볼 수 없는 우정이 느껴집니다.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어야 바른 계약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겠죠.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은 것 또한 사람이 가진 정상적인 욕망일 텐데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고 포기해도 풍요함으로 가득 찬 이유가 무엇일까요? 손해 보는 것이 즐거운 사람,나 때문에 남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지는 사람-바로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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