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월요일 뉴욕을 방문했다. 제74차 유엔총회 참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위해서다. 회담 일정이 급조되긴 했지만, 이번 회담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현란했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핵 폐기 문제가 실질적 진전은커녕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데다,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문 대통령의 뉴욕 방문 하이라이트는 단연 9번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다. 당초 유엔총회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하기로 했다가 미북 실무협상 재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러한 시점에서의 정상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는 단연 비핵화 촉진 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미동맹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게 더욱 절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북핵 중재에만 무게를 두느라 한미동맹 갈등에 대해서는 어떠한 현안도 찾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뾰족한 답 없이, “한국은 미국의 군사장비를 구매하는 큰 고객”, “내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북한과 전쟁 중일 것”이라며 공치사만 이어갔다. 

     사실상 지금은 한미동맹의 위기상황이다. 올해 초에는 한미관계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핵심 외교 당국자들이 연이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한국에 중재자 역할을 요구한 적이 없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얘기를 할 거면 앞으로 당신과 만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폼페이오 장관은 한술 더 떠서 “김정은도 문재인도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트럼프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전혀 신뢰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추진하는 북한 비핵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주체로, 이는 동맹으로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위기상황은 비단 북핵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미간 이견이나,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 아니다. 국제정세의 변화와 리더십의 변화로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위기라고 판단되는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다는데 있다. 냉전시기 절대적 우위에 있던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맹국들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과 다른 국가들의 도전이 이어지면서, 미국은 동맹국보다 더 많은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오히려 동맹국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장한 한국이 그 핵심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는 리더십의 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부터 동맹국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물론이고, 그 밖의 동맹 문제에 대한 입장이 과거 미국 행정부와는 확연히 다르다. 작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했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일방적 연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 번째는 북한이라는 변수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려고 한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위협’의 핵심은 한미동맹이다. 만일 한미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면,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현실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안보에 커다란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미동맹 위기의 상황은 북한의 전략을 제외하고는 한미연합훈련과 방위비 분담금으로 압축되어진다. 지금 한국은 북한과의 중재역할보다 한미동맹 강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북한 또한 미국과 틀어진 한국을 결코 중재자로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미국정부는 잇단 만류에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한국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런 불만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압박이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최근 동아시아 패권 장악을 위해 힘을 합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 흔들기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고, 중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주권 국가의 자주적 권리”라며 내심 반긴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때문에 한미동맹의 균열부터 해소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큰 성과는 없었다. 북한에 대한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약속만 재확인 했을 뿐이다. 여기에 트럼프의 단골메뉴인 방위비 인상건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끈질긴 요구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어 보인다.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이 확대되면, 주한미군 문제로 확대되고, 나아가 한미 통상갈등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미동맹 결속을 위해서는 먼저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미관계라는 큰 틀에서 보면 방위비 분담금은 상호 이익이 되는 윈-윈(win win) 구조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서 거래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켰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보 문제에 관심을 덜 쏟으면서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동시에 미국이라는 시장을 통해 최근 수년간 평균 2백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보아왔다. 이러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국은 국방비를 증액하며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산 무기 구매 비중도를 높임으로써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즉,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해주는 대신, 경제 분야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는 접근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의 협상 결과를 한국보다 더 잘 사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이나 일본과의 협상에 활용하고자 한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에게 명분을 주고, 우리는 실리를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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