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은 결렬됐다. 올해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노 딜(no deal)’로 끝난 후,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재개된 미북 실무협상도 8시간 만에 또다시 성과 없이 끝이 났다. 북한은 “미국이 빈손으로 왔다”며 결렬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다며 전세계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협상이 열리기 직전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이미 결렬을 예상하면서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사실 태 전 공사의 예상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포함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각 단계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대가로 대북 제재 일부 완화, 종전선언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은 비핵화 대화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오로지 '완전한 제재 해제, 체제 보장 조치가 먼저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처럼 이번 협상에서도 비핵화의 가장 기초인 비핵화 개념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김정은이 진짜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핵시설 신고, 검증, 폐기의 로드맵 작성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핵 포기를 전제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애초부터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게 그나마 이번 협상의 성과라면 성과다.

      북한 김정은은 외교 업적이 궁한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붙이면 핵 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바꿀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대북 외교 최대 치적으로 핵실험 및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 중단을 꼽아왔는데 북한이 노골적으로 이 레드라인까지 건드리며 트럼프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협상의 결렬에 대한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지만, 미국 측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실무협상 직전 한시적·부분적 제재 유예 등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북에 전달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중단 등 이른바 ‘영변+알파’를 대가로 북한의 핵심 수출 품목인 석탄과 섬유 수출 제재를 한시적으로 보류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 이후 새로운 계산법을 끈질기게 주장해온 북한의 요구에 대해 미국이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트럼프의 제안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걷어차 버렸다. 실무협상의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5일 협상을 마치고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30여명의 취재진 앞에서 미리 출력한 문건을 격앙된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며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문건을 만들어온 것을 보면 북한 측은 성명서를 미리 준비한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양측의 실무협상이 결렬되자 청와대는  더욱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실무 협상 성공을 통해 오는 11월 김정은의 부산 방문을 성사시키려던 청와대 구상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는 이번 미·북 실무 협상을 계기로 하노이 노딜 이후 동력을 잃은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래서 청와대는 미·북 간 실무 협상 성사를 위해 잇단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저자세로 임해왔다. 미북 협상이 또 결렬된 지금에도 문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과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개최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부산 방문, 공동 올림픽 개최 등과 같은 이벤트는 비핵화와 한미동맹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미국과 유엔, 전세계가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도출되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모든 애정공세는 자제되어야 한다. 말 안 듣는 북한 때문에 미국은 매번 화가 나는데, 한국은 오히려 북한과 친하게 지내지 못해 안달 난 모양새이다. 북한이 한국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퍼주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한미동맹에도 도움될 리 없다. 비핵화를 선언하기 전까지 모두가 북한을 견제하고 외면해야 하는데, 우리가 받아준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엔 큰 구멍이 뚫리고 북한은 핵무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최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게 미사일을 제일 많이 받은 정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정권 중 최다 기록이다. 북한은 김대중 국민 정부였을 때는 미사일을 1회 발사했다. 노무현 정권 11회, 이명박 정권 12회, 박근혜 정부 5회와 비교한다면, 문재인 정부 때는 18회 발사되었다. 아직 정권이 끝나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북한은 이번 미·북 실무협상이 열리기 며칠전 신형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시험발사했다. 누구봐도 한국을 업신 여기고, 미국을 향한 협박용 행위로 간주된다. 북한 전문가들은 동해에서 한 두차례 더 시험발사한 뒤, 서해에서도 발사 시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SLBM을 탑재한 3천톤급 잠수함을 바다에 띄울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지로 북측은 이번 실무협상 결렬 성명을 발표한 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달려있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관철하지 않는 한 미사일 발사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북한을 어루고 달래면 평화 통일로 이끌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평화통일은 반드시 비핵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북한 지원도, 공동올림픽 개최건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 원칙과 이에 바탕을 둔 로드맵을 도출하지 못하면 모든 합의는 결국은 좌초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이런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을 향한 애정공세 보다는 물 샐 틈 없는 한미공조 아래 포괄적인 비핵화 합의를 끌어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사일을 수없이 발사해도, 김정은에게 놀림거리가 되어도, 미국의 대북정책과 반대가 되어도 ‘북한 바라기’만을 고수한다면 비핵화의 길은 오히려 멀어질 수밖에 없다. 비핵화 전까지는 그 어떤 협상 테이블도 오픈되어서는 안된다. 유일한 지렛대인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으로 북핵을 무용지물로 만들 실질적인 군사적 대응책을 함께 수립해나가야 한다. 한·미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김정은은 핵 보유 꿈을 버리지 않는다. 한·미의 모든 안보 전략은 이 명백한 현실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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