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 자연과학박물관 연구팀 3년 탐사

     약 6,600만 년 전 공룡 대멸종 사건은 공룡뿐만 아니라 지상 생물의 75%를 사라지게 한 대재앙이었지만 인류에게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설치류 수준에 불과했던 포유류가 빠르게 회복하며 종의 분화가 이뤄져 인류가 출현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중생대 백악기(Kreidezeit/Cretaceous)와 신생대 제3기의 첫 세인 팔레오세(Paleogene) 경계에서 발생해 K-Pg 멸종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 직후에는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룡 대멸종으로 포유류가 진화하며 '기회'를 잡았다는 가설은 대체로 맞는 것이기는 하나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지는 못해왔다. 하지만 콜로라도주 중부지역에서 공룡 대멸종 직후 100만 년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동식물 화석이 무더기로 쏟아져 포유류 진화에 관한 연구가 한 차원 더 높아지게 됐다. 전미과학진흥회(AAAS)와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덴버 자연과학박물관의 고생물학자 타일러 라이슨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인근 약 17㎢에 달하는 커랠 절벽에서 3년여에 걸쳐 발굴한 공룡 대멸종 직후의 화석 수천점에 관한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현장에서 포유류 16종 화석 수백 점과 식물 6천여 점, 꽃가루 등의 화석을 발굴했다. 발굴 초기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동물 뼈 화석을 찾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동식물 주위에서 형성될 수 있는 '결핵체'(concretion)라는 암석을 찾아 돌을 깨고 안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발굴 방법을 바꾼 뒤 "최고의 기록"이라는 찬사를 받는 희귀 화석들을 잇달아 찾아냈다. 라이슨 박사는 대학원생 때 남아프리카에서 화석발굴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작은 포유류 주둥이를 닮은 흰색 결핵체를 깨고 안에서 악어 화석을 찾아냈으며, 이때부터 결핵체에 초점을 맞춰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됐다. 연구팀은 이번에 발굴된 포유류 두개골 화석 등을 토대로 소행성이 떨어질 당시 현장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렉스)와 같은 공룡과 약 8㎏ 미만의 포유류가 살던 숲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소행성 충돌 직후에는 일대가 양치식물로 덮였다. 깃털 같은 잎으로 불모지가 된 곳을 수백에서 수천 년간 덮어 숲이 다시 조성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K-Pg 대멸종으로 미국 너구리(라쿤) 크기의 포유류는 멸절하고 가장 큰 것이 500g정도의 쥐에 불과했다. 이 포유류들은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25%에 포함돼 있었거나 피해가 크지 않았던 다른 곳에서 옮겨왔을 수 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약 10만 년 뒤에는 일대가 야자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바뀌고 포유류의 덩치도 라쿤 크기로 커져 소행성 충돌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는 적어도 회복이라는 측면만 놓고 볼 때 상당히 빠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약 30만 년 뒤에는 호두나무 계통의 식물이 다양하게 등장했으며, 포유류도 종류가 늘어나고 덩치도 작은 돼지 크기로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초식 포유류들이 호두나무와 함께 진화했을 수 있다고 봤다. 약 70만 년 뒤에는 콩과식물이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늑대 크기의 50㎏에 달하는 포유류 2종의 화석도 발견됐다. 커랠 절벽에서 발굴된 포유류 화석 중 가장 큰 에오코노돈(Eoconodon)은 공룡 대멸종에서 살아남았던 포유류의 100배에 달하는 몸무게를 가진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포유류의 덩치를 키운 주요 동력은 공룡이 사라지면서 생긴 생태적 틈새라고 분석하면서, 당시 포유류 먹이의 질과 형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슨 박사는 콩과식물과 큰 덩치의 포유류가 동시에 등장한 것은 식물이 단백질을 공급하는 "단백질 바(protein bar)" 역할을 했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공룡 대멸종 직후 포유류의 신속한 회복이 지역적으로 어디까지 확대해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그러나 적어도 북미지역의 회복세는 이번 연구를 통해 확실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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