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세워 두었던 차량을 다시 움직이려면 무엇을 고쳐야 할까요? 할머니가 타던 차인데 운전을 안 하신 지 좀 되었습니다. 잘 손봐서 이제 면허를 딴 애가 타게 하려구요…” 이런 문의를 하시는 고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검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나열된 여러 권장 항목을 같이 검토하고 놀라면서 “차를 가만히 세워 두어도 고장이 생기나요 ?” 라고 질문하십니다. 서정적인 답변을 한다면 “네. 그렇습니다. 차는 가만히 세워두어도 문제가 생깁니다. 자동차는 본래 움직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겠지만 오늘은 이런 추상적인 대답 말고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차량을 한동안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게 될 사정이 생긴다면 도움이 됩니다. 먼저 우리가 고장이라고 표현하는 차량의 기능 상실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기계가 기능을 전혀 못하는 완벽히 망가진 상태도 있지만 새 것일 때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다시 말하면 완전히 망가지는 상태로 진행되는 중간적 상태도 있습니다. 이 역시 일종의 고장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새 차가 조립된 순간부터 자동차의 모든 부품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하는 고장으로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나빠지는 쪽으로만 변화하고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숙련된 정비사들은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 이 진행과정이 어디쯤에 있는지 평가합니다. 그 고장의 진행수준이 운전자에게 단지 불편을 줄 상황인지, 아니면 안전에 위협을 줄 상황인지를 판단해서 때에 맞춰 정비할 것을 권장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설계하는 연구진도 이런 진행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각 부품들이 안전에 기여하는 바를 고려하여 적절한 교환 주기를 정해 놓았습니다. 또한 부품들이 설계 당시에 계획한 수명까지 사용될 수 있도록 보호 조치를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운행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면 돌봐줘야 할 부분이 생깁니다. 세워 두었을 때 더 빨리 나빠지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엔진 냉각수(coolant)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냉각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엔진을 식히는 것입니다. 연소실의 높은 온도에 의한 부품들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냉각수는 끊임없이 엔진 구석구석을 순환합니다. 그런데 냉각수의 기능은 냉각만이 아닙니다. 냉각수는 연소가 되는 동안에 엔진을 식히는 기능을 하지만 엔진이 멈춰있는 순간에도 일을 합니다. 냉각수는 접촉하는 모든 부품에 대해서 방청 기능을 수행합니다. 엔진 냉각에 관련된 부품들이 녹슬지 않고 오래 가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냉각수 대신 물을 넣으면 엔진 내부에 심한 부식이 발생하고 녹으로 인해 그 통로가 막히기도 합니다. 엔진 오일도 그렇습니다. 기계부품의 마찰면에 유막을 형성하여 윤활기능을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산화를 방지하고 마찰과 연소로 인해 생성되는 이물질을 분해하여 제거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엔진 냉각수나 엔진 오일은 엔진이 작동하는 동안만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엔진이 멈추고 오래 지나면 순환을 하지 못하여 구석구석까지 제 기능을 수행하러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부품들이 산화되어 녹이 슬고 연소 찌꺼기들이 늘어 붙어서 성능이 떨어집니다.
 
       움직이거나 멈춰있는 것과 관련 없이 나빠지는 부품들도 있습니다. 오래된 타이어를 보면 표면에 많은 균열이 있습니다. 고무 재질이나 실리콘 재질의 부품들은 온도 변화에 따라 상태가 나빠집니다. 온도가 낮을 때는 경화되며 탄성을 잃어버리고 수축합니다. 온도가 높아지면 그 반대입니다. 이런 온도차가 반복되면 부품들에는 작동하거나 말거나 상관 없이 균열이 생기고 헐거워지며 변형이 발생합니다. 온도변화에 의한 열화는 금속 부품에도 예외 없이 작용합니다. 온도에 따라 금속도 팽창과 수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동차가  온도차에 노출되는 상황이면 운전여부에 관련 없이 모든 부품이 나빠지게 마련입니다.자동차는 쾌적한 도로 조건에서 적당한 운행을 하는 편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상태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합니다. 오래 서 있으면 타이어도 변형되어 찌그러지고 연료탱크에는 수분이 고이고 구석구석에 녹이 슬어 갑니다.
 
       어쩌면 자동차에게 있어 휴식이란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을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회전만 줄곧 해야 하는 도로를 달리던 차는 좌회전이 섞인 길을 가고, 산길만 다니던 차는 평지를 달려 보고, 히터만 사용할 조건에 있던 차는 에어컨을 켜는 조건으로, 시내만 운행하던 차는 고속도로도 달려야 합니다. 모든 기능을 다 고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있더라도 운전자가 알아차립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일에 몰입해 지내는 시절이 꼭 생깁니다. 좋게 해석하면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인데, 일을 즐기고 있다면 어느 정도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빠져 살면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가 되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곧 자신을 정의한다는 느낌으로 일에 매달립니다. 워크홀릭입니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쉬려고 해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면 점점 더 불안해지고 해야 할 온갖 일들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진정한 휴식이란 아무일도 하지않고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늘 매여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차는 낡아지기만 하는 것이며 아무 일도 안 하고있는 사람은 소모되는 인생일 뿐입니다. 둘 다 휴식은 아닙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