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결코 길을 묻지 않는다. 헤매고 돌다가 결국 지쳐 묻고 찾아간 곳에서‘모르면 모른다 하고 물어보면 될 것이지...’ 아픈 발을 주무르는 아내의 지청구를 듣는다. 남자들은 항복하기 싫어하는 기질 때문에 항상 고생이 많다. 나도 40까지 남자 폼 잡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내가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르며 깃털처럼 가벼이 떠돌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는 확신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얻어터진 후 예수님 앞에 찢어진 청바지의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저 왔어요. 항복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닌가 봐요.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때 알았다.‘진작 항복할 걸’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를’(May it be to me as HE have said)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결국 목사가 되었다. 아내에게도 항복하면 노후가 편안하다.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어머니는 늘 아버지에게 반복하셨다. 

     1945년 8월 6일, 현지시간 오전 8시 15분, 인류 최초의 핵무기‘리틀보이’가 일본 본토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했다.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는 목표지점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안전장치를 제어했다. 고도 9,750m 상공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이 자동 폭발 고도에 도달하기까지는 꼭 57초가 걸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버섯구름은 18Km 상공까지 치솟았다. 폭발지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고 그 순간 7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후유증으로 이와 맞먹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사망과 질병은 오늘까지도 이어진다. 연합군은 한 달 전 히로시마 상공에 삐라를 뿌렸다.‘항복하라고, 멀리 대피하라고’ 그러나 그 삐라를 무시한 사람들은 다 죽었다. 드디어 8월 10일 일본천황은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달하고 태평양전쟁은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게 오늘 일본이다.

     1636년 조선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에서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항복해서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최명길’과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최후의 한 사람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 예조판서‘김상헌’, 그 사이에서 인조의 번민은 깊어지고 결국 청의 포격이 시작되자 인조의 급명을 받은 최명길이 달려가 청의 칸에게 항복의 무릎을 꿇는다. 인조도 청의 칸 발밑에서 이마가 닮도록 절을 올리고 항복한다. 초라한 입궁 후 그 다음해 민들레꽃은 피어나고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거듭난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다 죽었으면 오늘 대한민국이 있겠는가? 항복하면 망하는 게 아니라 사는 길이 열린다.

     BC 627년경, 타락할 대로 타락한 남유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북쪽에 있는 잔인한 바벨론 군대를 보내 남유대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이때 분연히 일어선 선지자 예레미야는 눈물로 외친다. ‘죽지말고 항복하라고, 포로로 잡혀가더라고 살아서 미래를 보자고, 사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요시아왕(BC640)부터 시드기야왕(BC597-586)때까지 외쳐보지만 왕과 백성들은 ‘매국노를 죽여라’하면서 오히려 예레미야를 공격하다가 결국 3차에 걸친 바벨론의 공격에 굶어 죽고, 칼에 죽고, 불타 죽고, 포로로 잡혀간다. 결국 70년 후에 남유대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야에 의해 회복되지만, 애초에 항복했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회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일생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그것을 성경은 거듭남(중생)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Paradime Shift라고 한다. 내 어둠과 공허는 진정 창조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구름이란 원래 푸른 하늘을 가리는 것이니까. 푸른 하늘이 원래의 바탕이고 구름은 그 그늘에 지나지 않으니까. 혼돈과 흑암에 참회의 눈물이 보태진다면, 어쩌면 무엇인가 내 인생에 옥색하늘이 드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새로운 사실이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다’고 조지프 켐벨(Joseph Campbell,미국의 세계적인 비교신화학자)은 말했다.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이 캄캄해진 후에야 비로소 필요했던 새 인생이 오는 법이라고... 그게 항복이라고...

     BC 4년경, 동정녀(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말한다.‘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마리아는 무서웠다. ‘이 운명은 무슨 운명일까? 이 짧은, 어쩌면 덧없을 이 지상에서의 운명이...’ 갈릴리 나사렛의 아름다운 풍경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캄캄한 영혼이 항변한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가브리엘 천사는 계속 말한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그때 영혼에 섬광이 비치고 마리아는 이렇게 반응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이 항복으로 마리아는 위대한 메시야의 모친이 되었고 영원히 그 이름이 빛나고 있다. 이것이 항복의 힘이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항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대! 정말 항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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