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핀란드에서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올해 34세인 산나 마린 장관이 지난 10일 총리에 취임하면서 전세계는 핀란드의‘청년 정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27세 때 시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해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쳐 7년 만에 총리에 올랐다. 대한민국의 눈에는 신기할 수도 있겠지만, 핀란드에서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핀란드에서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가 나오자 전세계는 나이와 성별에 주목했다. 여성과 청년의 정치 참여가 쉽지 않은 한국과는 달리 핀란드에서는 나이어린 여성 총리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교육하면서 학생회 같은 자치 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또, 만 15세부터 원하는 정당에 가입할 수도 있고, 18세부터는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지방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핀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4년이 빠른 1906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최초의 유럽 국가였으며, 같은 해 선거에서 여성들을 후보로 내세울 수 있게 한 세계 최초의 나라다. 112년 전에 국회 의석 중 10%를 여성으로 채운 핀란드는 이후 꾸준히 여성비율을 높여왔다. 그결과 지난 5월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2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93명이 여성이며, 마린 총리는 2003년 선출된 안넬리예텐매키, 2010년 마리 키비니에미 전 총리에 이어 핀란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가 됐다. 또, 최소 득표율을 넘겨야 의석을 확보하는 이른바 ‘봉쇄조항’도 없애 군소정당의 의회 진입 장벽을 없앤 점도 여성이나 청년들의 정치 참여율이 높은 배경이다.

     사회민주당 소속인 마린은 중앙당, 녹색연맹, 좌파연맹, 스웨덴인민당 등 4개 정당과 협상해 연립정권을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총리에 올랐다. 연정 파트너인 4개 정당 대표도 모두 여성이다. 그뿐이 아니다. 총리와 연정 정당 대표 4명 중 3명은 30대의 젊은 정치인이다.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인 카트리쿨무니 중앙당 대표는 32세, 내무부 장관인 마리아 오히살로 녹색연맹 대표는 34세, 교육부 장관인 리 안데르손 좌파연맹 대표는 32세다. 또한 핀란드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47세다. 국회도 내각도 40대가 중심에서 주도한다는 얘기다. 세계를 자극한 이 신선한 뉴스를 한국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우리와의 차이가 현격하다. 18세가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는 OECD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보수정당과 한국교총 등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학업에 전념해야 할 고3 교실이 정치장으로 변질된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선거권을 갖는 나라는 숱하다. 일본도 만 18세가 되는 고3 학생들이 투표를 하지만 학교가 정치로 혼란을 겪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세계에서 가장 수준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국가라고 자처하면서도, 아이들의 역량은 사정없이 묵살해버리고 오로지 입시지옥에만 매달리게 하고 있다.

     갈수록 늙어가는 우리 정치판과도 비교된다. 대한민국의 20대 국회의원의 당선 당시 평균연령은 55.5세이다. 역대 최고령 의회다. 40세 미만은 1%인 3명에 불과했다. 단체장 중에서는 광역과 기초를 통틀어 40세 미만이 한 명도 없다. 장관의 평균 나이는 60세가 넘는다. 지금 하마평에 오르는 차기 총리 후보들도 모두 70을 넘겼다. 신진들의 공천권은 위계로 눌러버리기 일쑤고, 그나마 희망을 안고 정치에 입문했던 신진 의원들은 잇달아 정치를 포기하고 정계를 떠난다. 정계를 떠나는 초선들이 내놓은 공통적 솔루션은 국회 물갈이다. 즉, 이제는 젊은 인재들로 국회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권은 혜택을 누리기만 했을 뿐 후진을 키우는 데는 인색했다.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는 386 퇴진을 요구하는 바람이 거세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이른바 386 세대가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다. 386 이라 불리던 세대, 즉 30대의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들을 지칭하던 그 황금 세대들, 이제는 50대의 나이라서 586 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냉정하게 말하면 그리 혹독한 세월을 보낸 세대는 아니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취업 걱정을 별로 하지 않은 마지막 세대였다. 그들이 입사한 직후 금융위기가 닥쳐 대량 해고 사태가 남발되었지만, 신입사원들을 해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이들은 많은 혜택을 누렸다. 물론 87항쟁이라는 도도한 정치적 저항과 성취라는 결실은 그 세대의 자부심이었다. 그 덕분에 이들은 일찌감치 정치적 권력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3, 40대에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그 역동성에서 386 세대의 역할과 노력을 깎아내릴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독점적 지위는 위도 아래도 신경 쓰지 않는 독선을 잉태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그건 엄연한 현실이다. 청년 세대와 3, 40대를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민주화 투쟁과 새로운 경제 환경조성에 들인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핀란드의 젊은 정치에는 또다른 특징이 있다. 핀란드에는 공식적으로 남녀를 칭하는 대명사가 없다. 영어의 그(he)나 그녀(she) 모두 핀란드어로는 ‘핸(hän)’으로 번역된다. 핀란드 정부는 ‘핸’을 소개하는 홍보용 홈페이지까지 만들어가며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 놓았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계 최연소 총리라거나 여성이라는 단편적 사실이 아니다. 춥고 겨울이 긴 나라 핀란드, 그러나 숲이 많아 사람들도 신선한 나라,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 복지가 세계 최고인 나라가 핀란드이다. 이러한 수식어를 만든 것은 핀란드의 젊은 피였으며, 그 젊은 정치의 저력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요람에서부터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회의원들은 아비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치를 하는 나라, 유교 사상에 배어 기득권 갑질을 당연시 여기는 나라, 큰 차와 큰 집과 같은 과시의 몸부림에 익숙해져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바른말 하는 젊은이와 여성이 나올 때면‘어린 것들이, 여자들이 뭘 알아’하면서 폄하부터 하는 나라도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도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기꺼이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 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득권자들이 나서서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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