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미국과 이란의 강경대치로 국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지난 3일 이란군 최고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미국 드론의 폭격을 받고 사망했다. 곧바로 이란은 바그다드 내 미국 기지에 보복공격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테헤란 부근 상공에서 우크라이나항공 여객기가 이란군의 격추로 탑승자 176명이 전원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발생 이틀 후, 이란 혁명수비대는 여객기를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로 오인해 격추했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난 지금, 두 국가는 별다른 유혈사태 없이 서로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계속해서 부딪히면 중동지역은 물론 전세계가 불안하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동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조마조마할 수 밖에 없다. 예상대로 한국은 미국의 계속된 파병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우리 교민만 보호한다’는 제한적인 파병을 결정했다.

      20세기 이후 미국은 이란을, 이란은 미국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그 결과, 미국과 이란은 서로를 영원한 적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이란은 왜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그 역사는 약 70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현대사에서 이란이 미국에 큰 반발을 갖기 시작한 근원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 축출 사건이다. 민족주의자였던 모사데그 총리가 영국 기업이 지배하던 이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려 하자, 영국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이란의 모하마드 레자 샤가 군부에 공작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다. 이후 모사데그는 축출돼 해외로 추방됐으며 모하마드 레자 샤는 군주로서 권력을 강화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총리가 외국 정보기관이 사주한 군사 쿠데타로 쫓겨난 사건은 이란 국민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이를 통해 권한을 확대한 모하마드 레자 샤는 1963년 ‘백색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급속한 서구화 정책을 시작했으며, 자신의 권한을 강화시켜준 미국을 철저히 추종했다. 그리고 중동을 대표하는 친미국가로서 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하고 그 대가로 미국에서 핵연료와 기술을 도입해 원자력의 평화적 연구를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란 핵개발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모하마드 레자 샤 정권은 독재와 부패, 폭력적인 억압정치를 계속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런 반발이 쌓여 1978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으며, 민주화 세력과 종교 세력이 합작해 모하마드 레자 샤를 축출하고 이슬람혁명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1979년,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66명의 미국인을 444일간 억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지미 카터 대통령은 구출 병력을 보냈으나 사막에 헬기가 추락해 인명피해가 나면서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참사를 목격한 미국인들의 가슴에는 이란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깊이 쌓였다. 이 대사관 점거 사건 직후인 1980년 4월, 미국과 이란의 국교는 공식 단절됐다.

       인질극 와중인 1980년 9월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가 국경문제를 시비 걸며 이란을 공격해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해 거의 8년을 끌었다. 군인을 제외하더라도, 양쪽 모두 2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이란은 지금까지도 미국이 이라크를 배후 조종해 이란을 공격하도록 했다고 믿고 있다. 또, 1983년에는 내전 중인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파견됐던 미국 해병대 막사가 자살폭탄공격을 받아 307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때 미국은 쿠드스군을 지목했고, 당시 사령관을 맡아 최근까지 활약한 장군이 이번에 목숨을 거둔 솔레이마니다. 최근 양국 간 긴장의 원인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국제사회가 체결한 핵협상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어 이란에 가혹한 경제 제재를 가했고, 최악의 경제 궁핍에 처한 이란은 중동 곳곳에 구축한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 미국과 동맹에 군사 압박을 가했다.

       이처럼 미국과 이란의 악연은 쉽게 풀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에 따른 외교적, 경제적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국제 정세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럴 때마다 동맹국들은 더 가시방석이다. 핵협상에 참여했던 유럽 국가들은 훨씬 엄격한 핵협정을 이란과 다시 체결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두고 이유 있는 고민에 빠졌다. 간신히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파병을 결정했지만 여간 어정쩡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이번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미북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 경우 자신과 미국이 활용할 군사적 수단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지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 솔레이마니의 드론 살해를 명령했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주장대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므로 그를 제거했다는 ‘위협제거설’은 설득력이 다소 약하다.

     몇 곳의 미국 대사관 공격 가능성만 뭉뚱그려 제기하고 있고 위협의 임박성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아직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합리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자, 국제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개인 성향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해진 외교정책 따위는 없다는 얘기다. 그저 탄핵 위기를 벗어나려 도박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며칠 전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지역구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암살하는 자에게 3백만 달러를 포상금으로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란 군부와 최고지도자는 ‘반미 결사 항전’을 외치며 ‘피의 복수’에 앞장서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국민 피만 철철 흘리게 만들었다. 이제 중동 지역 평화를 위해서도 두 국가는 증오의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군사 보복이 아닌, 추가 경제 제재조치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대응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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