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새옹지마, 고진감래, 호사다마 라는 사자성어는 좋은 일에 꼭 따라 다닌다. 알다시피 재앙이 도리어 복이 된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득이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있다 라는 뜻들이다.  힘들 때마다 어르신들이“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다”고 위로를 했던 것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리스에서 방콕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경에 사로잡혀 몇 일 밤낮을 싸돌아 다닌 탓에 피곤했다. 기내에 앉아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눈을 감았다. 서 너 시간을 자고 깼다. 식사시간이라면서 승무원들이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승객의 대부분이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흔들리는 강도가 심해지면서 실내의 불이 꺼지고, 비상등이 켜지면서 비상 알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더욱 심하게 흔들려 앞에 놓여 있던 음식 그릇들이 공중에 날아다녔다.  승무원들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무엇을 정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긴 했지만 엄마 얼굴만 보였다.  20여분이 지났다. 정말 긴 시간이었다. 비행기의 흔들림은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기내는 쑥대밭이 되었다. 옆 사람을 붙잡고 우는 아줌마, 심지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답시고 뽀뽀를 해대는 연인들, 아예 의자 밑에 들어간 아저씨, 그리고 음식들이 바닥에 군데군데 널부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조종사를 원망하더니, 그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내릴 때에는 출구에 서 있는 승무원들에게 살아서 내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했다. 그리고 그 무서웠던 시간은 필자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무엇을 정리해야 하나,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어떤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인생의 중간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서울 출근길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문마다 사람을 마구 구겨 넣는 푸시 맨이 있을 정도였다. 기껏 5분, 10분 간격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인데, 뭐가 그리도 바쁜지 지하철이 정차되어 있으면 저 위 계단에서부터 뛰기 시작해 필사적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머리는 들어갔는데 다리가 못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러면 푸시 맨이 와서 도와준다. 바꿔 타는 역까지 꼼짝도 못하고, 얼굴은 매일 지하철 유리창에, 혹은 옆 사람 어깨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푸시 맨도 한계를 느꼈는지 필자의 탑승을 말렸다. 화가 나서 울그락 불그락 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학교 친구를 만났다. 작은 책을 하나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서울 뚝섬에서 배를 타고 다녔던 일화가 쓰여져 있었다. 열심히 나루터를 찾아왔는데, 배가 저만치 떠나고 있으니‘조금만 빨리 올 것을…’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늑장을 피운 것을 후회하는 사람에 대해, 늦게 온 것이 아니라 ‘다음 배를 위해 일찍 온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 적혀있었다.  이후 필자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살면서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복잡한 지하철 속에서 배운 교훈으로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 오히려 교훈이나 좋은 경험으로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한 상영가 판정으로 기사화 되면서 더욱 관심이 집중된 영화나 연극도 제작자 편에서는 전화위복이다.  매일 상사 눈치를 봐야 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비즈니스를 시작해 돈도 벌고, 마음도 편해진다면 이 또한 그렇다.  필자가 한국일보에서 근무하다가 4년 전 포커스를 시작한 일도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한인사회에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찾아오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 한인사회는 복이 된다는‘위복’의 전 단계의‘화’의 수준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의 한 도시에서 덴버와 자매결연을 맺어 비즈니스와 문화적으로 교류를 하고 싶어했지만 이곳에서 추진할 만한 협회가 없어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활동하지 않아 오래전에 없어져야 했던 단체도 많은데다, 한 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에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점을 인식하고, 바꿔 나간다면‘위복’의 단계에 이를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이를 바로잡기 싫고, 이를 바꾸고자 하는 민심도 없다는 것이다. 언제쯤 야무진 단체가 나와서 한인사회를‘위복’의 단계로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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