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가족들과 TV를 시청하면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유명한 영화 배우들의 얼굴이 스크린에 채워졌다. 톰 행크스,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호아킨 피닉스 등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이 객석에 앉아 있었고, 그들 속에 낯익은 한국 배우들이 클로즈업 됐다. 얼핏 보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출연했던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연신 불려지는 ‘Parasite(기생충)’ 라는 이름에 귀가 번쩍 뜨였다. 결국 우리는 놀란 가슴을 부여 잡고, 밀려오는 벅찬 감동 속에 저녁식사도 끝내지 못했다.
한국영화 기생충이 미국 영화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에서 4관왕에 올랐다.  기생충은 지난 일요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이 중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단숨에 석권했다.  1919년 ‘의리적 구토’의 상영 이후 한국영화 101년, 1963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아카데미의 문을 노크하기 시작한 지 57년 만의 일대 사건이다. 특히 비영어권 영화가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사상 최초다. 시상식장을 가득 메운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인터뷰룸에서 이를 지켜본 전 세계 220여 개의 언론은 한국영화 기생충을 향해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즉 미국 문화의 자존심 같은 상징적 이벤트로 보면 된다. 그만큼 그들은‘백인이 만든 영어 영화’에 집착해 왔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는 영화가 오스카 트로피를 받는다는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보다도 더 어려운 일로 여겨졌다. 기생충은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미국 중심적이고 보수적이며 시장 친화적인 아카데미의 벽은 높았다. 사실 ‘기생충’ 전까지의 한국영화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봉 감독은 이런 높은 벽을 허물고, 한국 영화사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계와 할리우드의 역사까지 바꿨다. 한국 영화 101년 역사상 가장 놀랍고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해외 주요 매체들 중에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작품상을 수상할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카데미가 그동안 선호했던 ‘전쟁’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다 골든글로브, 프로듀서조합, 영국 아카데미에서 모두 작품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17’ 외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조커(토드 필립스)’, ‘아이리시맨(마틴 스코세이지)’ 등도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모두 ‘기생충 신드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독상도 아시아 감독으론 대만 감독 리안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리안은 할리우드 영화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이어서 봉 감독과는 경우가 다르다.

       전세계의 영화배우와 감독들은 할리우드 진출이 평생의 꿈이다. 우선 영어를 배워야 하고, 할리우드 액션에 걸 맞는 장면을 연구해야 하고, 미국식 유머를 장면마다 조미료처럼 넣어야 했다. 설령 이러한 조합이 잘 이루어지더라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가 아니면 아카데미 상은 넘볼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기생충의 반란은 무엇보다 한국적 상황을 한국어로 담아낸 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세계는 ‘기생충’의 보편성에 주목했다. 기생충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빈부격차 같은 자본주의 폐해를 틀로 삼아 인간의 본성을 봉 감독만의 색깔로 파헤쳐졌다. 동서양 모두에 해당되는 보편적 소재와 서사를 갖고 오직 이야기의 힘만으로 미국의 심장부를 정확하게 겨냥한 것이다. 현재‘기생충’은 전세계에서 1억6000만달러의 흥행실적을 올렸고, 지금도 인기몰이 중이다. 중학교 때부터 '스크린' '로드쇼' 와 같은 영화 잡지를 보며 감독을 꿈꿨던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찍기 직전까지는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 비디오를 찍거나 사다리차 같은 제품 사용 설명 비디오를 찍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바라보는 눈이 이때 싹텄다. 그리고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흥행엔 실패했지만 지금의 '봉준호 월드'의 뿌리가 되었다. 결국 봉 감독은 우리도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한국 영화의 값어치를 세계가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이번 시상식에서 어릴 적 우상이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할리우드 감독들을 동경하며 자란 한국의‘비디오 키드’가 아카데미 무대를 정복한 순간이었다. 봉 감독은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소감을 내놨다. 가장 한국적 풍경에서 고유한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봉준호만의 특이점이다. 방탄소년단의 선전에 이어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파워가 그 어느 때보다 폭발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한국어 가사로 전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고, 세계 영화산업의 심장인 할리우드가 우리 영화에 빠졌다. 이제 우리 문화가 변방이 아니며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부에 당당하게 입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봉 감독의 기생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밴허, 사운드오브 뮤직’ 등 세계 명작들과 함께 나란히 돌비극장에 새겨진다. 콧대 높은 할리우드를 따라잡은 그의 노력이 눈물 나게 고맙다. 우리보다 먼저 아카데미 시상식의 문을 두드린 일본과 중국도 해내지 못한 일을 봉 감독이 해냈다. 문득 지난주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동양인을 싸잡아 출석을 금한 이탈리아 명문 음악학교가 생각난다. 전세계의 문화예술인들이 집중해서 봤던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 감독과 기생충은 아시안이라고 해서 다같은 아시안이 아님을 몸소 증명해 주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봉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수준과 위상, 평판을 드높인 주인공이다. 자랑스럽다. 제 2, 3의 봉준호가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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