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 있는 '성경 박물관(Bible Museum)'이 있습니다. 지하에는 최근까지 단 한 권의 성경을 위한 특별 전시장이 있었습니다. 고대 양피지 성경부터 전 세계의 진귀한 성경이 모두 전시돼 있는 곳에서 이 성경은 특별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성경은 1808년 런던에서 간행된 것으로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겉보기엔 일반 성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책은 창세기를 마친 뒤 바로 출애굽기 19장으로 넘어갑니다. 출애굽기 1~18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압제를 피해 이집트를 탈출하는 극적인 장면이 나온 부분입니다. 이 책은 이른바 '노예 성경(Slave Bible)'입니다.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할까 봐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구약성경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빼고 만든 것입니다. 백인 지배층은 성경을 통해 '사랑'이 아닌 '굴종'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노예 성경엔 구약의 약 90%, 신약의 50%가 삭제되거나 편집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삭제됐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3장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와 같은 문구도 삭제됐습니다. 반면 베드로전서 2장의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는 문구나 누가복음 12장의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는 부분 등은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이상은 조선일보 2019년 11월 22일자 특파원 코너에서 일부 인용). 흑인들이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 기독교의 교리를 알게 돼 주인(백인)들의 요구에 반항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는 흑인들만을 위한 설교와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노예들이 미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문화를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몇몇 노예주들은 흑인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흑인들이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 기독교의 교리를 알게 되고, 교육을 받게 되면 주인들의 요구에 반항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흑인들만을 위한 설교와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마시고 버린 콜라병 하나로 인해 큰 사건이 벌어진 아프리카의 한 부족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1980년에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합작으로 만든 코미디 영화입니다. 원제는 The Gods Must Be Crazy(신은 미친 것이 틀림없다)입니다. 한국에서는‘부시맨’이라는 영화로 알려졌습니다. ‘부시맨’족 마을에 어느 날 비행기 조종사가 지나가다가 버린 빈 콜라병이 떨어지게 됩니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에 ‘부시맨’들은 그걸 신의 물건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평화롭던 마을에서 분쟁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주인공은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콜라병을 세상의 끝에 가져가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부시맨’이라는 영화를 재료 삼아 노예를 부리는 백인들의 사고를 살펴봅시다. 백인에게 콜라병은 콜라를 담았던 쓰레기이지만,‘부시맨(흑인)’에게는 하늘의 신이 주신 물건입니다. 백인은 흑인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흑인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노예의 신분이지만 흑인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구원으로 인도한 백인에게는 ‘충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리카에 가서 ‘미개(未開)한 흑인’들을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으로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은 단순한 논리로 설득을 하는 데서 벗어나 이제는 성경을 인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9장 25절에 처음으로‘종’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가나안의 아비’인 함(노아의 둘째 아들)이 노아의 하체를 보게 되고, 이로 인해 가나안의 사람들은 노아의 나머지 형제들의 종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레위기서의 25장 44절에서 46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한 사람들을 종으로 삼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예수가 노예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노예제도를 인정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서신 중에서 에베소서 6장 5절은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흑인들에게 지금의 삶에서 고난과 굶주림을 믿음으로 이기라고 말하는 것은 평생, 자신의 후손까지 가난이라는 멍에를 매라고 강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구원을 실제적인 삶이 아닌 영과 혼의 구원으로만 경계를 만들고, 흑인들이 사회에 새로운 계층으로의 상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노예의 신분에서 흑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백인 기독교 교리에서는 간단합니다. 그저 흑인들은 주인에게 ‘충성’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소위 말하는 ‘착한 종’이 되고, 세상에서의 직분, 하나님이 주신 뜻을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사랑을 가르친다 해도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수정하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순식간에 압제의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이 같은 '진리의 편집'은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이 진리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저의 유익을 위해 성경을 왜곡하고 싶을 때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 진리의 말씀을 선교지에서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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