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부부가 호숫가를 걷다가 발이 미끄러진 아내가 그만 물속에 빠져버렸다. 서럽게 울고 있는 흥부에게 물속에서 산신령이 올라와 ‘왜 우느냐?’고 물었다. ‘아내가 물속에 빠졌습니다’ 산신령은 곧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클레오파트라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 여자가 네 아내냐?’ ‘아닙니다. 제 아내는 그렇게 멋지지 않습니다’ 산신령은 다시 들어가더니 양귀비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 여자가 네 아내냐?’ ‘아닙니다. 제 여자는 그렇게 예쁘지 않습니다’ 산신령이 다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정말 흥부의 초라한 아내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 여자가 네 아내냐?’ 흥부가 눈물겨운 목소리로 ‘네 그 여자가 제 아내입니다’ 그랬더니, 산신령은 ‘참 착하구나 다 가져라’ 그러면서 세 여자를 다 주었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놀부는 가기 싫다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가서 호수에 밀어 넣고는 훌쩍거렸다. 잠시 후 산신령이 나타나 ‘왜 우느냐?’ 묻자 ‘아내가 물속에 빠졌습니다’ 놀부가 대답하는 순간 산신령은 물속에서 단번에 놀부의 아내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 여자가 네 아내냐?’ 놀부는 속으로 ‘어, 이게 아닌데...’ 당황한 나머지 ‘아니다’라고 해버렸다. 그러자 산신령은 ‘그래? 잘 됐구나. 마침 이 안에 다른 여자도 없고 이 여자뿐이니 내가 데리고 살겠다’ 그러면서 사라져 버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이다’고 통 큰 정치를 하는 문 대통령에게 그 산신령이 나타나 물었다. ‘이 황사가 네 것이냐?’ ‘아닙니다’ ‘이 미세먼지가 네 것이냐?’ ‘아닌데요’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네 것이냐?’ ‘아닙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고개를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산신령은 ‘참 착하구나. 다 가져라’ 그러면서 사라졌단다.

     그래서 그런지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마스크 없이 못살았다. 이미 익숙한 마스크 Life라서 그런지 요즘 고국은 온통 마스크로 도배를 한 느낌이다. 마스크대란이다. 며칠전 그 귀한 마스크를 쓰고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기분으로 아내와 산책을 했다. 마주친 백인들이 멀리 돌아간다. 무엇보다도 내가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봄이로되 봄이 오지 않았다’ 도시는 한마디로 반자연(Anti-natural)의 공간이다. 자연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싸우는 공간인지라 때때로 자연이 공격을 한다. 내 느낌은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렇다. 물론 잠시 후면 또 도시의 문명이 이기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으로 부터의 거리를 문명의 높이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 도시의 본질이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덧칠하지 않으면 금새 회색의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도시인인 나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전혀 낯설지 않다. 백화점, 노점상, 바글바글한 인파, 매연으로 답답한 열기...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의 머리 색깔과 피부색이 가지각색이라는 점 정도일까? 그 도시들이 온통 Ghost town으로 변해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적막이 두렵다. 잔디는 이방인처럼 초로록 올라오는데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가 가엽다. 고개 들어 어느 구석이든 잠시만 시선을 멎어보면 파란 하늘 속 스쳐가는 구름이 비로소 생기로 쏟아진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생명에 감사한다.

    절망적   뉴스의  홍수 속에 선지자 엘리야의 외침이 들려온다. ‘There's no god like JEHOVAH’ 트럼프부터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이렇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이 사실을 믿는 하박국 선지자는 민족의 멸망 앞에 이렇게 노래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2:14)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마친 후,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7:13-14) 전염병이 창궐(Pandemic)하고 메뚜기 떼가 침노하는 이때에 성도들이 무릎 꿇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고치신단다. 세상의 운명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달려있다.

     교회가 바이러스의 숙주로 의심받고 있다.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로 타락하더니, 어려운 이때는 ‘현실이 없는 이상주의’를 고집하다 추락한다. 이상(理想)은 추락함으로 싹을 티우는 씨앗이지만, 대지(좋은 밭)에 추락해야 한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는 슬프다. ‘믿음’이란 나에게 복을 주는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나의 잘못을 비춰주는 존재로서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비춰보고 변화되는 것이 ‘믿음’이다. 작은 빵 다섯이 주님손안에서(in His hand) 부서졌을 때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가득 차도록 남았다. (막6:43-44) ‘주님손안에서 내가 부서지는 것’ 그것이 크리스챤의 덕목이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세상이 산다. 부서지기(변화되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스팔트위에 떨어진 민들레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난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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