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모욕, 임금착취 어디까지인가?

신분이 불안정한 한인들이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한계가 있다. 영어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법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정식 일자리는 꿈도 꿀 수 없다. 결국 이들이 기댈 곳은 같은 동포들이 하는 소규모 한인 비즈니스들뿐이다. 리커 스토어, 세탁소, 모텔 카운터, 식당 같은 비즈니스들은 이들 불법 체류 한인들이 일을 하는 대표적인 곳들이다. 업체 주인들은 정식으로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를 고용할 경우 고용세, 의료 보험료, 소셜 시큐리티 세금과 같은 각종 제반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 현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공생 관계는 한인 이민 역사와 함께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런데, 정말 이러한 관계가 공생 관계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힘든 이민 생활에서 같은 동포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가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실상은 착취와 억압, 모욕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사는 이모(52)씨는 10여년간을 불법 체류자로 살아오면서 대부분 세탁소에서 일을 해왔는데, 결국 지난달로 일을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곳의 세탁소를 전전하며 일을 해왔지만, 이씨를 인간답게 대우해준 세탁소 주인은 거의 없었다. 이씨가 좋은 마음으로 한 조언은,“영주권도 없는 주제에 뭘 나서냐”는 식의 대꾸로 되돌아왔고, 이혼 후 오랫동안 혼자 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영주권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으면서 뭐가 잘났다고 혼자 사느냐, 아무나 시민권자 한 명 잡아서 결혼하라”는 인간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또 지난해부터 일해왔던 세탁소의 주인 김모씨는 이씨에게 “불법 체류자들은 미국 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말을 면전에서 했다고 한다. 조금만 일을 잘 못해도 가차없는 욕설이 날아왔고, 처음에 8시간 일하기로 하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10시간에서 12시간씩 일을 시키고 처음 약속한 월급에서 한 푼도 더 얹어주지 않는 파렴치함을 보였다.

김씨는 그나마 낫다. 그 이전에 일했던 곳에서는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체크해서 5분 이상 넘어가면 싫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결국 이씨는 만성 소화불량과 스트레스에 따른 두통에 시달리다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비단 이씨의 경우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고용하는 것이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푸는 일인냥 으스대고 잘난 척하는 고용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정모씨(48)는 덴버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한지 8년이 됐다. 웬만한 식당의 역사와 주인들을 알고 있다. 여행비자로 미국에 왔다가 눌러앉은 정씨는 식당에서 이것저것 안 해 본 것이 없다. 하지만 신분 때문에 유독 많은 무시를 당해야 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점심 식사 손님들을 받으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인이 화가 나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남편과 싸운 화풀이를 나에게 해댔다. 가게문을 닫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고용인들을 인간적이고 동등하게 대해주는 고용주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불법 체류자들도 인간이고, 이전에 같은 한인 동포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 이민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이들을 고용함으로써 자신들도 경제적인 이익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일부 악덕 고용주들은 고용인의 체류 신분을 이용해 법정 최소 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주고 더 많은 시간 일을 시키는 사례가 많이 있다. 그러나 고용인들은 불법 체류 신분이라는 입장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모욕과 수모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씨는“이유야 어쨌든 가족을 부양하고 살아가려는 이들의 신분을 악용해 이들의 노동력과 임금을 착취하고, 거기에다 인간적인 모욕마저 서슴지 않으면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고용주들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언젠가 내가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내가 뿌린 씨앗이 풍성한 수확이 되어 돌아올 것인지, 아니면 야멸찬 멸시와 거부로 돌아올 지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정씨는“믿을만한 곳이 한인사회 밖에 없었다. 경기가 어려워 사회가 삭막해졌지만 불법체류자도 같은 동포라고 생각하고 인간적으로 대해줬으면 한다”면서 야박한 인심에 눈시울을 적셨다. 그녀는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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