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혹자들이 보기에 엉터리 궤변같은 내용을 여러 곳에서 적지않게 주장하였다. 그러한 주장에는 영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문법에 집중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과, ‘들을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라는 현혹적인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과, 1-2년의 어학연수로 습득되는 영어는 없다는 것과, 원어민 교사가 최고는 아니라는 것과, 문법은 영어의 기초가 아니다라는 것과, 문법은 영어가 아니라는 것과, 영어권의 ESL 프로그램도 효과적이지 못하다라는 것과, 영어는 차라리 예능과목이라고 주장한 것 등이 있다.

위와 같은 주장에 비하면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어교육이 삐뚤어졌다는 주장은 이제는 어느 정도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모두가 상식적이라고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이해들과는 극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주장들을 무분별하게 단순한 현혹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경험과 관심 및 관찰을 바탕으로 소신을 갖고 주장한 것들이다. 그러한 주장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반발(?)에 부딪히는 것은 바로 영어를 습득하기 전의 과정에서 문법에 집중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라는 주장과 원어민 교사라고 최고는 아니다, 라는 주장이다.

문법은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나 배우는 학습자들에게 마치 기독교인들에게 성경과 같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메김을 해왔다. 그러므로 문법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대단한 반발과 불신을 유발한다. 단순한 ‘문법무용론’을 주장하는 것도 영어교육의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토익이나 토플공부를 하면서 문법을 맹신하는 학생들에게 그와 같은 반발과 적개감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문법폐해론’의 주장에 대한 반발은 더더욱 심하다.

또한 ‘원어민 교사 만능주의’에 빠진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실용적인 가치의 얄팍한 한계에 대한 나의 주장 역시 대단한 반발을 초래한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인다는 천동설을 믿고 있을 때, 사실은 그 반대임을 발견한 코페르니쿠스는 그 많은 반대와 위협을 무르쓰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자들에게는 역시 엉터리 궤변같은 내용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주장은 바로 한국인들에게 유창한 영어습득을 위한 최적의 공부환경은 바로 한국이다, 라는 것이다. 영어만 사용하는 원어민들이 넘쳐나는 미국이나 기타 영어권 국가의 ESL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것이다. 얼핏듣기에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일뿐이다. 물론 이것은 올바른 영어교육방법을 적용할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올바른 영어교육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유창한 영어를 못배우기는 피차일반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장하는 올바른 영어교육의 적용은 바로 BTM 방법을 의미한다.

영어공부를 위한 한국의 환경이 갖는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장점은 바로 너나 할 것 없이 영어에 매진하는 생존적인 열기 그 자체이다. 책방에 가면 학습자료는 얼마든지 풍부하게 널려있다. 무엇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그 과정과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에서는 영어공부의 열풍에 떠밀리듯 저절로 온갖 시간과 노력을 다하여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뒷골목의 쿰쿰한 반지하의 하숙방에서 독수공방하는 학생들에게도 유창하고 수준 높은 영어는 꼼짝없이 잡히게 된다.

한국에서도 BTM방법으로 불과 2-3년이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잘 읽고, 쓰고, 들을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원어민 선생님께도 몇 년씩 영어를 배우고, 넘쳐나는 원어민들과 수십년을 이웃하면서 살아도 불과 몇 백 마디도 못되는 콩글리쉬와 듣지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영어의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의미가 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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