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한 지인과 식사를 하면서 재미있는 얘기가 나왔다. 한국 음식이 세계화 되지 못한 이유가 ‘자기만의 비법’을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모두 저마다 설렁탕, 김치, 갈비, 비빔밥, 국밥의 원조라고 외치면서, 그다지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꼭꼭 숨겨둔다. 공개 되지 않는 국가 기밀 수준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고집을 고수하고, 그 고집이 국가와 커뮤니티를 배제한 것이라면 진정한 비법이 될 수 없지 않을까.

가끔 미국 방송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비슷한 타이틀을 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여과 없이 보여주곤 한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장면이 7,80년대 한국에서 벌여진 시위진압과정이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경찰봉, 그 팔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대학생의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체류탄 때문에 화면은 뿌옇다.  한국전쟁 당시 몇 십만 명의 군인이 죽었고 한반도는 초토화되었다는 내레이터와 함께 흑백필름이 텔레비전에 나와 ‘한국은 정말 못사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국 땅 이곳에서 그런 장면을 보는 것은 감회가 정말 남다르다. 마치 미개한 한국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덴버 포스트지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 친구에게 시청자들에게 한 순간의 재미를 주기 위해 30년이 훌쩍 지난 옛날 얘기를 들춰내 지금도 마치 한국이 그런 나라임을 인식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불쌍한 역사와 상관없이 주말마다 한국 식당을 찾아가는 한국음식의 마니아이다. 그렇다. 부끄러운 역사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여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한때 한국을 일으킨 생활의 달인들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선진화의 초석을 외국의 번듯한 사례가 아니라 시정의 남루한 모습에서 찾고 있는 건 다소 의외였다. 오토바이로 내달리면서 고층 아파트 문 앞에 정확히 신문을 던져 넣고, 음식 가득한 쟁반을 이고 혼잡한 남대문 시장을 아슬아슬하게 누비는가 하면, 대형 빈 생수통 15개를 맨손으로 수거해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씩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활의 달인’이 보여주는 경지는 속도, 정확성에 있다. 그 미세한 차이가 범인과 달인을 가른다.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반복, 경험, 일에 대한 흥미와 자부심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저 일에 전념하다가 걸리는 게 있으면 궁리 끝에 터득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생활의 달인들이 습득한 방법이야말로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정석이다. 이러한 달인이 국가경쟁력을 만들었다.

현대중공업이 맨땅에서 배를 만들었을 때 조선업계는 ‘용광로 없이 쇳물을 제조하는 격’이라며 반신반의했다. 선박은 도크에서 건조한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깬 역발상이다. 삼성중공업은 바다에 바지선을 띄워 배를 만드는 ‘플로팅 도크’ 공법을 개발했다. 모두 세계 최초다. 주문은 쏟아지는데 도크가 부족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수없이 시도한 끝에 얻어낸 성과다. 육지나 바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배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조선 기술은 가위 달인의 경지다. 컴퓨터, 텔레비전, 전화기 시장도 이미 세계를 장악한지 오래다. 이러한 ‘산업의 달인’들이 대한민국을 굳건히 버텨주는 경쟁력이 됐었건만 미국 방송에 나오는 한국에는 이런 자랑스런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없어 아쉽다.

덴버에도 생활의 달인이 많다. 이런 불황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비즈니스를 꾸려나가는 경영의 달인, 고기, 쌀, 밀가루, 채소 가격 폭등으로 가격을 올려야 하나 어쩌나 고심하지만 그래도 장사 잘하고, 잘 이겨내고 있는 한인업체들 또한 이민사회의 달인이라면 달인이다.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봉사의 달인, 자녀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교육자들, 나아가 부모도 그렇다.

하지만 이민생활을 하면서 왠지 대접받지 못하는 느낌, 방법 없는 억울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린 미국 방송에서 생각하는 50년 전 코 찔찔이 한국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 두자. 그리고 경기가 힘들수록 똘똘 뭉쳐서 ‘코리안 커뮤니티는 불경기 속에서도 잘 돌아가고 있는 커뮤니티’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한인 업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외식할 때도 한국 식당에서, 자동차 정비도 한인에게, 진료도 한인 의사에게, 장도 한인 마켓에서, 심지어 세탁소, 리커 스토어, 융자, 부동산도 한인들이 경영하는 곳으로 가면 더욱 좋지 않을까.

살아가는데 자기만의 비법과 방법도 중요하겠지만,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또한 이국만리 땅에 모여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가 이민사회의 달인이 될 수 있는 생활의 비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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